[총장과의 대화]박영식 가톨릭대 총장 "AI도 인문학 없으면 반쪽짜리"

“인공지능 기술도 인문학적 사고에 바탕 둬야 유용”
“인문사회분야 산학협력으로 사회 원하는 인재 양성”
약대 유치, 구조개혁평가 최우수 이어 코어선정 쾌거
  • 등록 2016-05-30 오전 5:30:00

    수정 2016-08-31 오전 11:17:59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인류사회가 이공계 기술만 갖고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인공지능이나 컴퓨터기술도 인문학적 사고에 기반을 해야 유용한 것이 됩니다.”

가톨릭대는 국내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의 산학협력’을 시도해 성과를 거둔 유일한 대학이다. 박영식 총장이 취임한 2009년부터 ‘인문사회계열 중심의 산학협력’에 주력해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 3월 교육부의 ‘대학 인문역량 강화(CORE·코어)’사업에 선정된 게 대표적이다.

코어사업은 기초학문인 인문학을 육성하고 사회 수요에 부합하는 융·복합 인재 양성을 위해 도입됐다. 교육부는 올해 첫 사업신청을 받아 지난 3월 16개 대학을 선정했다. 가톨릭대는 서울대·고려대·이화여대·한양대·서강대·성균관대 등 쟁쟁한 대학들과 함께 수도권에서 선정됐다. 올해 코어사업 예산은 405억 원으로 대학 당 평균 28억 원이 지원된다. 대학들은 이를 교육과정 개발 등 인문학 보호·육성에 활용할 수 있다.

가톨릭대가 코어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교육부에 제시한 인문학 발전계획은 크게 두 가지다. 인문학과 경영학을 융합한 ‘글로벌 인문경영 융합(G-Humanage)’모델과 스토리텔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글로컬 문화스토리텔링(G-Storytel)’ 모델이다. 박 총장은 글로벌 인문경영 융합 모델에 대해 “인문학과 경영학의 단순 융합 모델이 아니다” 라며 “문화 간 소통능력을 갖춘 글로벌 경영 리더를 키우기 위해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심어주고 외국어 구사력과 글로벌 현장 실무능력을 익히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09년 취임 후 ‘화학적 통합’ 나서

가톨릭대의 모태는 신학과와 의과대학이다. 1855년 충북 제천의 성요셉신학교에서 사제양성 교육을 시작하면서 국내 최초 서구식 교육기관으로 출발했다. 1936년 가톨릭교회가 서울 명동에 성모병원을 개원하면서 의과대학이 자리 잡아 갔다. 1995년 가톨릭 성심수녀회가 설립한 성심여대와 통합하면서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지금은 △성신교정(서울 종로구 소재, 신학과) △성의교정(서울 서초구, 의대·간호대 △성심교정(경기도 부천, 인문사회·자연과학계열·생명환경·약학 분야) 3개 캠퍼스로 나뉘어 있다.

가톨릭대는 성심여대와 통합한 1995년 이래 명실상부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통합 후 한동안 물리적 통합을 화학적 통합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박 총장은 2009년 취임 직후 ‘3개 교정의 화학적 통합’에 나섰다.

“매달 교무회의 시간은 한 시간 내로 끝냈습니다. 이어 3시간은 3개 교정의 교수들이 모여 회식을 갖도록 했지요. 보통 회식 시간이 3시간씩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3개 교정 교수들이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교류하게 됐습니다. 화학적 통합을 이루자 그 때부터는 대학 발전에 구성원 역량을 결집할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대는 2010년 약학대학 유치에 성공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는 28년 만에 약대 정원 390명의 증원이 이뤄졌고 전국에서 40여개 대학이 ‘약대 유치전’에 뛰어들어 15개 대학만 선택받았다. 가톨릭대는 경기도에서 동국대·아주대·차의과대·한양대와 함께 약대 유치 대학에 포함됐다.

박 총장은 가톨릭대가 교육부의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 △학부교육선도대학(ACE) 사업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사업에 잇따라 선정되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5대 총장 임기 만료를 앞둔 2012년 12월 말에는 6대 총장으로 연임됐다. 연임 총장은 가톨릭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이래 박 총장이 처음이다.

약대 유치 후 주요 국책사업 휩쓸어

연임 뒤 성과도 탁월하다. 2014년부터 △대학 특성화지원사업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연속으로 수주했다. 특히 2015년 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는 최우수(A등급)을 받았으며 올해 3월에는 대학 인문역량강화(코어)사업에도 선정됐다.

“정부의 다양한 국책 사업들은 나름의 필요가 있어 기획된 정책입니다. 학생들의 진로 개척을 지원하고 대학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기획된 것들이지요. 이런 생각으로 국책사업에 적극 도전해 사업을 유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육 환경·여건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대학 구성원들도 국책사업 유치에 도전하고 선정되는 과정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지요.”

가톨릭대의 성과는 ‘역발상’에서 비롯됐다.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문송’(문과라 죄송합니다)과 같은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인문계 취업난이 심화되자 대학가에서는 유행처럼 인문계 학과를 폐지하거나 축소했다.

반면 가톨릭대는 오히려 인문학을 다른 학문과 융합시키며 생존을 모색했다. 가톨릭대에 ‘코어사업 선정’ 성과를 안겨준 ‘글로벌 인문경영 융합(G-Humanage)’모델 등은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최근 3년간 가톨릭대의 장기현장실습 참여 학생 중 73%는 인문사회계열 학생이다. 그만큼 산업수요에 부응한 인문계 인재양성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2014년에 개봉한 ‘황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필리핀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주인공이 태권도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이야기지요. 이 영화 제작과정에 우리 대학 교수와 국문·철학·미디어기술콘텐츠 전공 학생들이 참여해 참여 학생 일부가 취업에도 성공했습니다. 인문계가 취업이 안 된다고 학과를 폐과하고 교수를 해고하고 학생들을 나몰라라 할 수 없습니다. 이공계기술 발전과 더불어 인문학적 상상력이나 소양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합니다. 인문학을 사회수요에 맞게 융합·발전시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인문학이 대학의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박 총장은 최근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관심을 모은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혁신을 가져온다 해도 그것을 인간다운 삶으로 끌어줄 소양이 없으면 인류사회는 멸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을 보호·육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 대학의 의대·약대는 이미 국내 최고 수준이지만 인문사회계열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그간 교육부의 국책사업에 도전해 왔고 다행히 생각했던 목표를 모두 이뤘습니다. 국책사업 선정으로 얻는 국고보조금은 학생들의 위한 교육과정 개편이나 교육환경 개선에 모두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성교육으로 믿을 수 있는 인재 양성”

박 총장은 학생들의 인성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초중고 교육이 대학입시에 매몰되면서 인성교육이 부실해진 만큼 대학이라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게 박 총장의 지론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정작 인격이 형성되는 초·중·고교 재학 시절에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느라 부모와 대화할 시간도 없지요.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등한시 되는데도 공부만 잘하면 이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로 대학에 들어오기 때문에 대학에서라도 인성교육이 필요합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끔찍한 ‘묻지마 살인’이 이슈인데 이 또한 인성교육이 부족한 탓입니다. 인성과 지성에 더해 생명을 중시하는 ‘영성 교육’이 절실한 때입니다.”

가톨릭대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윤리적 리더 육성 프로그램(ELP)’을 시행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성교육 모델인 ELP는 1~2학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교육하며 학생들의 인성·영성·창의력을 배양하고 봉사정신을 키워주는 게 목표다.

“ELP는 생명을 존중하는 인성교육을 목표로 합니다. 여기에 다양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 지식인 양성에도 초점을 맞췄지요. 인간학·영성·사랑나누기과정에서부터 영어·IT과정·교내외 봉사활동까지 교과와 비교과 영역을 아우르는 교육과정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이익만을 좇는 장사꾼이 아니라 기업에서 ‘금고 열쇠를 맡길 수 있는 인재’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성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기업에서 원하는 실력을 갖추고 금고 열쇠까지 맡길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
박영식 총장은...

1954년 경북 김천 출생이다. 가톨릭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로마교황청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서번역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승필 신부에 이어 국내 3호 교황청 성서대학 박사다. 2008년부터 교황청 성서위원을 지낼 정도로 성서주석학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손꼽힌다. 1984년부터 3년간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로 활동한 뒤 교황청 우르바노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1997년부터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문화영성대학원장·대학원위원을 거쳐 2009년 가톨릭대 5대 총장에 올랐다. 2012년 총장 재직기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6대 총장으로 연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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