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경제학]⑨두산베어스의 숨은 수비수 `밥캣`

  • 등록 2016-04-30 오전 10:35:00

    수정 2016-04-30 오전 10:35:00

두산베어스 투수 유희관 선수의 모자 오른쪽에 밥캣 로고가 새겨져 있다.(사진=두산베어스 제공)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프로야구 선수들이 경기 중에 입고 쓰는 야구 용품은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헬멧·모자의 좌우 측면, 유니폼 가슴과 좌우 소매, 바지, 심지어 목덜미(뒷면 상단) 등 곳곳이 다 광고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다. 유니폼 상의 왼쪽 소매에 새겨진 광고물은 우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선명하게 보인다. 반대로 좌타자 타석에서는 오른쪽 소매에 붙은 광고물이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우타자가 많아서 왼쪽 소매가 오른쪽 소매보다 비싸다. 좌·우타석 어디에서나 비교적 잘 보이는 유니폼 가슴 부위도 비싼 곳이다. 공격때 쓰는 헬멧은 물론 수비때 착용하는 모자에도 광고물은 어김없이 부착된다. 광고물도 공수 교대를 하는 셈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이러한 광고물을 선수 용품에 부착하지 않는다. 고액 TV중계권과 스포츠마케팅이 발달해 있는 메이저리그는 굳이 유니폼까지 광고를 부착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이다.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단은 어느 곳 예외 없이 야구로만 생존하기 어렵다. 모기업 없는 넥센히어로즈는 물론이고, 모기업 덕분에 넥센히어로즈보다 한결 형편이 좋은 9개 구단도 공짜로 돈을 받지 않는다. 9개 구단 선수들의 야구 용품에 계열사가 광고·사업비로 지원해주는 스폰서 금액의 대가로 광고물이 부착된다. 롯데자이언츠 헬멧 오른쪽에 ‘롯데마트’ 기아타이거즈에 헬멧 왼쪽에는 ‘K3’ 로고가 붙어 있고, 삼성라이온즈와 LG트윈스도 계열사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최신형 휴대폰 이름을 붙인다.

오늘 중점으로 다룰 구단은 초반부터 1위를 내달리고 있는 ‘디펜딩 챔피언’ 두산베어스. 올해 두산베어스의 올해 유니폼에는 새로운 광고물이 부착돼 있다. 우타자가 타석에 등장했을 때 화면에 잘 잡히는 유니폼 왼쪽 소매에는 분홍빛 배경에 흰색 글씨를 새겨진 ‘두타 면세점(DOOTA DUTY FREE)’이 있다. 지난해 두산(000150)그룹이 신사업 일환으로 경쟁을 뚫고 획득한 서울시내면세점이다. 두타면세점은 헬멧에도 새겨져 있다.

타자들이 수비할 때 쓰는 모자 오른편에는 시라소니 로고의 ‘밥캣(Bobcat)’ 광고가 있다. 투수 모자에도 부착돼 있다. 소형 건설장비업체 밥캣은 지난해부터 두산베어스 스폰서로 이름을 올렸다. 밥캣이 두산베어스 모자에 광고를 하는 것은 광고효과를 노린 것이라기보다는 사실상 기부행위다. 야구모자에 붙은 광고를 보고 밥캣의 주력제품 굴삭기를 구매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밥캣이 두산베어스를 지원하는 것은 두산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때 밥캣은 두산에게 애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야구단의 옛 이름 ‘OB베어스’가 상징하듯 맥주(OB맥주)로 유명했고, 콜라·햄버거·치킨(코카콜라·버거킹·KFC)도 팔고 심지어 김치(종가집)도 팔던 소비재 기업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꾸준한 사업재편을 통해 2000년대에 이르러 소비재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중공업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사업구조 전환의 정점을 찍은 것이 2007년 인수한 미국 소형 건설장비업체 밥캣이었다. 당시 소형 건설장비시장 세계 1위의 점유율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던 밥캣이었기에 두산의 기대감은 컸다. 그래서 인수대금 5조원 중 3조원 넘은 돈을 빌려서 지불했다.

밥캣을 인수하기만 하면 나중에 벌어들이는 돈으로 빌린 돈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야심차게 밥캣을 인수한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연쇄적으로 건설경기가 악화됐고 밥캣도 기대만큼 돈을 벌지 못했다. 빚 내서 인수했는데 빚이 줄지 않고 비싼 이자 부담만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산인프라코어(042670), 두산건설 등 주요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그룹 전체가 빚더미에 허덕였다.

밥캣에서 비롯된 두산그룹 전반의 빚 부담은 아직도 온전히 해소되고 있지 않지만, 2010년부터 이익을 내기 시작하던 밥캣은 애물단지 신세에서 벗어났다. 어느새 국내 주식시장 상장(IPO)을 준비 중이다. 밥캣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두산그룹 전반의 유동성 문제에 긍정적 신호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두산베어스 투수 이현승과 포수 양의지가 경기승리후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양의지의 상의 왼쪽 소매에 두타면세점. 이현승의 모자 오른쪽에 밥캣 로고가 부착돼 있다.(사진=두산베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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