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AFPBB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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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어제 새벽 고위급 당국자 간의 협상 끝에 6개항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무력 충돌 위기를 슬기롭게 넘겼다. 자칫 교전 상황으로 치달을 뻔했던 위기 국면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반길 만한 일이다. 북측이 준(準)전시상태를 해제했고 남측도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상응하는 등 남북은 이미 합의 이행에 들어갔다.
남북 협상 사상 가장 긴 무박 4일 43시간의 마라톤회담 끝에 100% 최선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낸 정부의 협상력은 평가할 만하다. 비록 우리가 요구한 ‘사과’라는 표현이 ‘유감’으로 바뀌었지만 북한이 예전처럼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재발 방지 약속도 합의문에 어느 정도 녹여냈다고 본다.
이번 접촉은 무엇보다 ‘원칙이 통하는 남북관계’의 전범(典範)을 세웠다는 의미가 크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가 주효했다. 박 대통령은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던 그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도발과 협상, 보상, 재도발’로 이어지는 남북관계의 악순환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끊겠다”는 원칙론을 재차 강조하며 우리 협상 대표단에 힘을 실어 주었다.
국민들의 단합된 모습도 한몫 단단히 했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빚어지던 ‘남남 갈등’이 이번에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여야도 정쟁을 자제했다. 특히 전선에서는 “후임병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며 전역을 미루는 병사들이 속출했고, 2030세대가 SNS에서 한목소리로 북한의 도발을 규탄한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한·미 군사 공조가 원활히 이뤄지고 중국이 평양에 비판적 신호를 보낸 것도 북한의 ‘벼랑 끝 전술’ 차단에 적지 않은 효과가 있었을 게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를 시작하는 첫날에 협상이 타결된 것은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에 남북 관계가 크게 진전할 여지가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하지만 ‘원칙이 통하는 남북관계’는 이제 겨우 물꼬를 텄을 뿐이고 앞으로의 당국자 회담이나 이산가족상봉 행사 등에 관행으로 정착시키는 게 요긴하다. 아울러 남북이 정상회담 등의 ‘통 큰 합의’를 통해 한반도 긴장 해소와 상호 공존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실현하는 초석을 차근차근 놓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