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서 서민금융기구를 일원화하고 서민금융 상품도 통일해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대안을 내놨지만 김씨와 같은 한계 가계에 대한 지원책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러시앤캐시를 비롯한 대부업체들이 잇따라 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이들마저 제도권으로 편입됨에 따라 향후 한계 가계에 대한 지원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부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경환 부총리가 사령탑을 맡은 2기 경제팀은 ‘한계 가계’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 풀뿌리 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았다. 이와함께 한계기업 증가의 영향으로 덩달아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 마련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 “말 만 서민금융”…사각지대 내몰린 9~10등급
신용등급이 9~10등급인 이른바 ‘저신용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정부가 저신용자인 서민들을 위한 대출 제도와 채무 조정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최하 등급인 9~10등급의 경우 사각지대에 놓여 결국 불법 사금융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가 최근 ‘햇살론’으로 명칭을 통합한 서민금융상품 대부분은 6~10등급을 대상으로 하지만 9~10등급의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햇살론이나 새희망홀씨 등의 지원자격에는 ‘연체 중인 자(금융채무불이행자)’를 제외하고 있다”며 “9~10등급 신용불량자들은 연체중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지원 대상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게다가 대부업체에서조차 홀대를 받아 돈을 마련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87개 대부업체를 조사한 결과 올해 초부터 5월까지 2536건의 대출이 신청됐는데 이 가운데 1966건(77.5%)이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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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러한 금융채무불이행자를 위해 국민행복기금이나 신용회복위원회, 법원 등을 통한 ‘회생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이들이 회생 제도에 들어와 채무조정을 받고 일정 기간 성실 상환을 하면 소액 대출도 가능하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개인 파산이나 채무 조정의 경우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낙인’이라며 꺼리는 경우가 많고, 일정 기간 성실 상환을 하지 못 하면 아무리 급해도 불법 사채 외에는 대출을 받을 방법이 없어 관련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서민금융기관의 서민금융 공급기능을 강화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민간 서민금융기관에서 정부가 출시한 상품을 취급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2기 경제팀 ‘한계 가계’ 회생책 마련해야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서울시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저소득층의 자산형성프로그램인 ‘희망플러스·꿈나래통장’을 전방위적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내년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서민금융진흥원(서민금융총괄기구)’이 주로 지원(대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자활방안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희망플러스통장은 소득 수준에 따라 월 5만∼20만원을 3년간 저축하면 서울시와 민간후원기관이 공동으로 적립금을 넣어줘 본인 저축액의 2배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꿈나래통장은 월 3만∼10만 원을 3년 또는 5년간 저축하면 일정금액을 추가로 적립받을 수 있다.
윤 원장은 “미소금융 등 현재의 서민지원 프로그램은 재원이 바닥나고 있는데다, 대위변제율(연체율)도 높아 저소득층 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지속가능한 지원을 위해서는 저소득층 스스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희망통장’과 같은 제도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민간 연구소의 한 대표는 저신용자 지원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 대표는 “신용등급 9~10등급은 사실상 대안이 없다”며 “9~10등급은 현재도 연체중이거나 빚을 갚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들, 즉 신용불량자기 때문에 구제받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법원에 가서 개인파산 제도를 활용하던지, 신복위 개인회생제도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대부업체에 가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