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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지난 1995년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21세기 첨단 산업 중의 하나가 관광입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구경거리가 별로 없어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시설을 조국에 남기려는 뜻밖에 없습니다. 놀이 시설도 호텔로 제대로 한번 세울 겁니다.”
이 발언에서‘관광’, ‘조국’ 같은 중간 단어를 지우고 처음과 끝 문장을 다시 연결해보면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죽기 전에) 제대로 한번 세울 겁니다”이라는 문장이 된다. 제2롯데월드는 신 총괄회장이 꿈에 그리던 사업이다. 그것도 죽기 전에 완수하고 싶은 숙원사업이다.
롯데기 잠실에 건설하고 있는 제2롯데월드는 높이 555m, 지상 123층짜리 초고층건물이다. 이 건물이 다 지어지면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건물이 된다. 단순히 롯데가 초고층건물을 짓는다는 이유만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불안의 원인은 초고층건물이 아니라 뒤로 물러서지 않는 신 총괄회장의 욕망이다.
최근 제2롯데월드의 주변부 상업시설을 조기개장을 추진할 때도 마찬가지다. 롯데는 서울시에 상업시설 사용신청을 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4월 개장을 목표로 입주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일할 직원까지 다 뽑았다. 안전시설이나 관련 증빙 자료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채 사업승인 요청을 제출했고, 서울시가 조기개장을 불허하자 “보완해 다시 준비하겠다”며 물러서지 않는다.
롯데의 고집스러움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인근 석촌호수의 수위가 낮아졌다느니, 잠실 일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구덩이인 ‘싱크홀(Sink hole)’이 생겼다느니 하는 말까지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국민들이 롯데의 제2롯데월드를 매우 불안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세계에 자랑할만한 조국의 시설’이 아닌 ‘회장의 무리한 욕심’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마천루 건설 프로젝트는 주로 돈이 풀리는 통화완화 시기에 시작되지만 건물이 완공될 쯤에는 경기 과열의 거품이 꺼지면서 결국 불황을 맞게 된다는 이 가설은,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는 인간의 탐욕이 불안한 미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신 총괄회장의 고집과 욕망에 롯데를 사실상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아버지를 찾아가 “잠시 멈추겠습니다”라며 ‘합리적 판단’을 재고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강행해야 할지 기로에 선 셈이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롯데홈쇼핑의 ‘갑질’ 논란과 사촌들의 신 총괄회장의 부의금 소송 등 뒤숭숭한 롯데 이미지를 환골탈태해야 하는 의무도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