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보다 소중한 내부출신 관행만든 조준희 행장

  • 등록 2013-12-27 오전 6:00:00

    수정 2013-12-27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보리 기자] “여신관리부 故 정OO차장님, 고객센터 故 김OO 부장님, 양산지점 故 강OO 지점장님...”

지난 2010년 12월 29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조준희 신임 IBK기업은행장은 직원들 33명의 이름을 직접 다 한명 한명 불렀다. 이들은 지난 2009년 1월 근무시간 정상화 운동 이후에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투병 중에 있는 동료들의 이름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업은행 직원 모두는 숙연해졌고 일부는 눈물을 훔쳤다. 조 행장이 직접 쓴 취임사는 그렇게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50년 전통 기업은행에서 내부 출신 첫 은행장이란 점에서다. 이런 수식어를 제외하고라도 그가 기업은행에서 특별한 이유는 은행원의 애환과 고충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선배’였기 때문이다. 당시 공공기관이었던 기업은행에 으례 낙하산으로 내려와, 직원들 조차 행사 사진 속 근엄한 모습으로 만나는 그런 행장과 그의 행보는 달랐다.

그의 취임 후 첫 과업은 직원들에게 일할 맛 나는 직장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고객 신뢰과 실적은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취임 일성에서 “매주 1회 꼴로, 연간 60회 이상 실시하는 캠페인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캠페인과 프로모션을 대폭 줄이겠다”고 말했다. 실제 매주 1회 꼴로 실시되는 캠페인은 조 행장 취임 이후 대폭 줄었다.

직원들은 조 행장이 기업은행에 남긴 것은 그가 조직에 희망을 심었다는 점을 든다. 그는 꿈이란 두루뭉술한 단어를 인사로 보여줬다. 계약직 입사직원이었던 이애리 과장의 승진으로 직원 30%를 차지하는 계약직 직원들도 조직에서 수단이 아닌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운전기사와 청원경찰 출신의 지점장과 출장소장 승진 인사로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이것이 결과가 돼 돌아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조 행장의 파격은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된다. 그는 매년 임원부터 행원까지 많게는 전직원의 20%에 이르는 인사를 하루에 끝냈다. 통상 10여일 이상 걸리며 직원들이 자신의 인사에 관심이 쏠린 개점휴업 상태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학력에 대한 선입견도 과감히 탈피해, 지난 2011년에는 금융권 최초로 특성화고 인재 176명을 채용했다. 또 올 1월에는 기간제 계약직 1132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계약직에게 가장 무서운 ‘계약기간’ 조항을 없앤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 역시 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기업은행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 뿐만 아니라 2년간 1000개 중소·증견기업에 무료 컨설팅을 제공했다. 실제 중소기업 대출 실적 역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0년 말까지 실제 중소기업 대출 증가분 19조 3000억원 중 기업은행이 담당할 비율은 17조 6000억원으로 전체의 91.2%를 차지하는 엄청난 성적표를 보였다. 지난 2011년과 2012년 사이에도 전체 중기 대출 17조원 중 기업은행의 몫은 11조 7000억원으로 단연 독보적인 실적을 보였다.

최근 기업은행에서는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었다. 모피아 중심으로 차기 기업은행장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리던 시기였다. 직원들의 80%이상이 조 행장의 연임에 손을 들었다. 그는 기업은행에 내부 행장의 힘을 보여줬다. 직원들은 조 행장이 내부 행장이 이끄는 조직에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신명을 심어줬다고 입을 모은다.

27일 퇴임하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운 것도 은행권 최초 여성 은행장에게 바통을 물려주면서 ‘내부 출신의 아름다운 전통’을 세웠기 때문이다. 연임만큼보다 값진 전통을 만드는데 그가 큰 족적을 남긴 덕분이라는 게 금융권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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