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분양 이대로 괜찮나]수요자 중심'후분양' 투기 막고 부실턴다

선분양 실패로 건설사 연쇄 부도
소비자 선택권 강화 필요성 대두
후분양 시행 따른 위험 감수해야
  • 등록 2013-12-24 오전 6:59:00

    수정 2013-12-24 오전 11:04:56

△주택사업에 치중해온 많은 건설사들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이 쌓이면서 위기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후분양’활성화를 통해 사업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0년 부도처리된 대주건설이 미분양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용인시 공세동 ‘대주피오레’아파트. <사진제공:부동산114>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선분양 위주의 주택 공급 방식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100%를 넘어선 주택 보급률에 있다. 주택의 절대 부족 상황이 해소돼 대규모 공급의 필요성이 약화되고 있는만큼 후분양 전환을 유도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후분양이 이뤄지면 모델하우스와 실제 공급된 주택과의 차이에 따른 분쟁이 없어지고, 분양권 전매로 인한 투기 가능성도 차단할 수 있다. 특히 후분양은 자금력과 기술력이 없는 부실 건설사가 무분별하게 분양사업을 벌이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시장을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후분양은 선분양에 비해 건설 자금 조달이 어려워 분양가격이 더 높아질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선분양’ 제도가 건설사 위기 낳아

23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100위 내 건설사 중 21개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상태다. 과거 100위 내에 이름을 올렸던 대주건설과 씨앤우방, 삼능건설, 월드건설, 한솔건설 등은 부도 처리됐다.

이들 건설사는 모두 주택사업에 주력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선분양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청약 실패로 미분양이 쌓이자 유동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며 좌초하게 된 것이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 기준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6만4433가구로 이 중 악성인 준공 후 미분양도 2만3306가구에 달한다. 미분양 적체는 대형 건설사도 예외가 아니다. 두산건설이 지난 4월 준공한 2700가구 규모의 ‘일산 위브더제니스’는 미분양 해결 여부가 회사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여전히 선분양에 의지해 정확한 사전 분석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분양사업을 하고 있다”며 “업체의 미분양 리스크를 줄이고 분양 계약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후분양 기법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현재 전국 미분양 아파트 물량. <자료:국토교통부·단위:가구>
“후분양으로 소비자 선택권 강화해야”

후분양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로 침체에 빠진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해 분양가 자율화를 실시했고, 그 대가로 후분양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주택시장이 호황기에 접어들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후분양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2004년 2월 후분양 전환 로드맵을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이명박 정부가 2008년 11월 재건축 후분양 제도를 폐지하면서 민간 후분양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박근혜 정부가 올해 7·24 부동산대책 후속조치에서 수도권 미분양 물량에 대해 일부 후분양 전환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공급 물량 조절을 위한 단기적 조치에 그쳤다.

하지만 이제는 주택 보급률이 2010년 이후 100%를 넘겨 아파트의 대량 공급 필요성이 낮아졌고, 다양한 형태의 주택 공급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후분양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현재 국회에서 2007년 9월 시행된 ‘분양가 상한제’ 폐지가 추진되고 있는 만큼 가격 자율화에 맞춰 후분양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건을 직접 보고 마음에 들면 돈을 내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를 실현해 분양 사기 등 피해를 막자는 것이다.

권오인 경실련 부동산감시팀장은 “공급자 중심인 선분양 제도에서는 아파트 하자 등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소비자가 직접 보고 집을 선택할 수 있는 후분양으로 전환하는 것이 다툼을 줄이고 건설업계의 내실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착 단계에서의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후분양 제도를 활성화하기는 데 걸림돌도 적지 않다. 우선 분양가 상승 압박이다. 후분양을 실시할 경우 현재의 국내 건설업 구조에서는 분양가 상승 위험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곽창석 ERA코리아 부동산연구소장은 “선분양 제도에서는 청약을 통해 조기에 분양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후분양 체제에서는 은행 대출이나 PF(프로젝트파이낸싱)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건설사들은 금융 비용과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자금력이 충분한 거대 시행사에 의해 분양사업이 진행되지만, 국내에서는 선분양 없이도 자금 조달이 가능한 우량 시행사를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후분양이 완전한 정책단계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수요자들은 상당기간 높은 분양가를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후분양이 제대로 시행되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수요자들도 후분양에 따른 분양가 상승 리스크를 함께 떠안아야 한다”며 “은행권이나 보증기관도 후분양에 맞게 점진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고, 분양가 상한제 폐지는 물론 후분양에 확실한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활성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선분양을 후분양으로 바꾸면 자금 조달 방식이나 청약제도 전체를 손질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임대사업자가 많은 물량을 분양받을 수 있게 제도를 바꾸는 등 후분양 리스크를 줄이는 장치를 마련하고, 맞춤형 주택 상품 개발 등 다양한 관련 연구도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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