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분파, 이념의 갈등은 이번 18대 대선에서 유례없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막판 1대1 구도로 정리되면서 선거전은 이념의 전장, 집단사고 간 격렬한 대립의 장으로 변모했다.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선 결과는 이념의 승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108만여표의 격차를 두고 이념적으로 한 쪽이 다른 쪽의 우위에 섰다고 단정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 보단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양 측의 ‘선거전략’이 명운을 갈랐다고 보는 게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학의 권위자 스티븐 웨인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선거전략의 기본은 중간지대를 선점한 후 상대방을 극단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복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진영의 의제를 선점, 중간층의 표심을 파고든 뒤 상대방을 왼쪽 극단으로 밀어넣은 보수진영의 선거전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외형상 절대 불리한 구도가 아니었던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전략적 실패는 기본적으로 진영 내에 팽배한 사고의 경직성, 현실인식에 대한 편협성 때문인 듯 하다.
마르크스가 사회구조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아(我)와 피아(彼我)간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변혁을 모색하듯 한국의 진보진영도 세상을 선(善)과 악(惡)의 단선적 사고로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 평등과 정의, 공존과 공생의 공동체적 가치, 기득권을 타파하고 소수와 빈자를 대변한다는 도덕적 우월감에 자신의 진영은 ‘선’, 상대 진영은 ‘악’이라는 오만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다. 여기에 오랜기간 서슬퍼런 권위주의 체제의 그늘 아래서 반독재투쟁으로 다져진 치열함과 도덕적 엄숙주의로 근본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사고체계는 더욱 단단해졌는지 모른다.
보수진영이 부도덕이나 부패, 기득권 지키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쇄신을 이룰 수 없듯 진보진영도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진영논리에 갇힌 독선과 독단을 탈피하지 않으면 진화할 수 없다. 고장난 영사기의 흑백필름처럼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며 세상을 편의적으로 재단하는 경직성과 편협성으로는 더 이상 진보의 미래는 없다.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두바퀴로 달려 나간다. 진보가 꽃을 피우지 못하면 보수도 지리멸렬해진다. 보수와 진보 두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건전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자극할때 중간지대는 두텁게 형성될 수 있다. 그래야 그 사회는 포용의 정치·화합의 정치· 통합의 정치로 한발짝 더 전진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