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잊혀진 것들

  • 등록 2012-05-29 오전 6:00:00

    수정 2012-05-29 오전 6:00:00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29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박보희 기자] 지난 24일은 묘한 공통점이 있는 날이다. 서울 대한문 앞에 설치됐던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가 강제 철거된 날인 동시에,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단체의 회원들이 집단으로 삭발식을 거행한 날이다.   또 서울 여의도 국회의 경우 통합진보당이 기자회견을 자처해 검찰의 당원 명부 압수수색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천명한 날이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은 없다. 이달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이 ‘총체적 부실·부정선거’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책임지고 경쟁 명부 비례대표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에, 당사자 일부는 사퇴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해결책을 찾던 중앙위원회에서 급기야 당대표가 당원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틈에 검찰은 ‘당의 심장’이라는 당원 명부를 압수해 갔다. 진성당원제를 근간으로 한다는 진보 정당의 당원은 검찰의 정치 사찰 가능성에 떨고 있지만, 이들이 뽑은 지도부는 여전히 ‘내가 옳다’며 정치 공방을 벌이고 있다.  

쌍용차 사태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77일 동안의 파업 끝에 쌍용차는 정리해고자 일부를 무급휴직·전직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의 노사합의안을 지난 2009년 발표했다. 이후 3년이 흘렀지만 복귀한 이는 없다.

그동안 계속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지난 3월에는 22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해고 노동자들은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고 정부에 해고자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22개의 관은 쓰레기장으로 실려 갔다. ‘노동자’를 위한다던 진보 정치인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강정마을 사태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국방부가 제주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 지역으로 선정하자 주민들은 찬성 36표, 반대 680표로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공사는 강행됐다. 4·11 총선을 앞두고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곳을 찾아 “주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막아서는 퍼포먼스를 강행했다.

구럼비 바위가 폭파되자 이를 막는 주민이 경찰에 강제 연행되는 모습만 잠시 언론매체에 언급됐다. 이후 총선이 끝나고 육지 사람의 기억에서 강정마을은 곧 사라졌다. 주민들이 나서 ‘삭발’로 대응할 때도 진보 정치인은 아무도 이곳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쌍용차 사태와 제주 강정마을 사태는 묘한 공통점이 있는 사건이다. 4·11 총선 이전 누구보다 열심히 이곳을 찾아 주민과 사건 관련자의 처지를 대변하겠다던 진보 정치인이 머물던 곳이다. 진보 정치인의 퍼모먼스를 믿고 소중한 한표를 행사한 이들의 삶의 터전인 곳이다.

이른바 진보 정치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이 돌아가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시점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추위 속 핸드폰..'손 시려'
  • 김혜수, 방부제 美
  • 쀼~ 어머나!
  • 대왕고래 시추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