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 노동자..생명건 4600원의 질주

정부 특수고용 노동자로 구분..노동기본권 인정 못해
5월부터 산재보험 혜택..노동계 “형식적 보험” 비난
  • 등록 2012-03-16 오전 6:00:00

    수정 2012-03-16 오전 6:00:00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16일자 10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채병수(57)씨는 이른바 `도로의 무법자` 퀵서비스맨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운영하던 작은 공장의 문을 닫고 30만원짜리 중고 오토바이로 시작한 일이었다. 아이들 때문이라도 그냥 주저앉을 수 없었다.

한건에 1만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야 하루 10여건을 간신히 채우지만, 중계수수료 23%와 주유비, 휴대전화 요금을 제하면 손에 쥐는 건 고작 4600원에 불과하다. 한 건이라도 더 해야 하루 일당 7만원을 벌수 있다.

최근 퀵서비스 업체가 늘어나 일거리 자체가 줄어들었다. 마음이 바빠지며 오토바이엔 가속도가 붙는다. 한번은 빗길에 미끄러져 발목 뼈가 부서졌다. 집안의 가장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을 생각하니 오래 누워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깁스 상태로 오토바이를 탔다. 몇 년이 지났지만 발목의 뻐근함은 여전하다.

채씨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다”며 “차량 추돌사고라면 치료비 부담이 줄지만, 개인과실이라면 100%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택배기사 중에는 온전히 치료를 받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오는 5월1일부터 채씨와 같은 퀵서비스 노동자 13만명이 산업재해 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산재보험 수혜자에서 제외됐던 이들이 근로자의 날인 5월1일 부분이나마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이들은 환영보다 반감을 보이고 있다. 온전하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산재 혜택을 보는 사람은 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다. 이들은 근로 계약 대신 사용자와 위탁 계약을 체결한다.

근로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로 구분되기 때문에 노조도 만들 수 없고 사용자와 임금 협상도 할 수 없다.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눈길, 빗길 사고로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절뚝이면서도 다시 일터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양용민 민주노총 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주변에 들려오는 얘기만 모아도 한 달에 5명이 다치고 두 달에 한 명씩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며 “산재 인정이 가장 필요한 현장이지만 정부는 아직도 소극적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일반 근로자의 경우 사용주가 산재보험료 100%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퀵서비스 노동자는 개인사업주로 간주해 전속성이 없는 경우 100%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 가입도 일괄 가입이 아닌 임의 가입 형식이다.

지난 2007년부터 정부는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과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콘크리트 믹서 트럭 운전자 등 4대 특수 형태 업무 종사자에게 이같은 방안을 적용했다. 이들의 산재 보험 가입률은 9.7%에 불과한 실정이다.

양용민 위원장은 “한 업체에서 계속 일을 하는 전속성이 있는 노동자는 14%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86%는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데 누가 얼마 되지 않는 일당을 쪼개 보험을 들려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양 위원장은 이어 “업체들의 중계수수료에 산재보험료를 포함시키면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특수 형태 업무 종사자라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하더라”며 “지금과 같은 특수 형태 업무 종사자 산재 혜택은 노동자에게 그림의 떡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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