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E][PF 사업장 해부]①A급 회사채에 등 돌린 투자자들

  • 등록 2010-11-04 오후 1:05:00

    수정 2010-11-04 오후 1:05:00

마켓 인 | 이 기사는 11월 03일 13시 36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 인`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이태호 기자] “지난 4월 시장을 아찔하게 만든 사건이 생겼습니다. 신용등급 A급 건설회사 한 곳이 만기도래 기업어음(CP)을 제 날짜에 갚지 못할 뻔 한 겁니다.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이번 일로 최근 A등급 건설사 전반에 대한 회사채시장 우려가 급작스럽게 커졌습니다.”

한 회사채시장 관계자는 A급 건설회사도 더 이상 안전지대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분양과 미입주 문제로 현금흐름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시행사 부도로 갑작스레 대규모 빚을 덮어쓰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돈을 빌리는 기간은 갈수록 짧아지는 추세다. 들어오는 현금이 말라가는 상황에서 잦아진 돌려막기는 지난 3년간 누적돼 온 건설산업 위기의 뇌관으로 떠오르며 다시금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A급 회사채에 등 돌린 투자자들

장외채권시장에서 투자자들의 A등급건설 회사채 기피 현상은 지난 지난 7월 이후 신용스프레드 변화를 통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AA급 건설회사 신용스프레드가 동일등급 민평(자기민평) 대비 급격히 축소되는 동안 A급 스프레드는 확대일로를 걸으며 극명한 대조를 보인 것이다.

채권평가회사들에 따르면, 10월18일기준 국내 최우량 건설회사인 현대건설(AA-), 삼성물산(AA-), GS건설(AA-), 포스코건설(AA-)의 3년만기 회사채 자기민평 스프레드는 각각 40, 3, 49, 42bp를 나타냈다. 지난 7월19일의136, 105, 142, 152bp와 비교하면 3개월 만에 100bp 안팎의 스프레드가 사라진 것이다. 특히 삼성물산은 스프레드가 0에 근접하면서 오랜 `건설업종 디스크운트`가 거의 사라졌음을 과시했다.

그러나 A급 건설회사들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택사업 리스크가 비교적 높은 편인 현대산업개발(A+), SK건설(A), 두산건설(A-), 한화건설(A-), 현대엠코(A)의 3년만기 회사채 자기민평 스프레드는 각각 118, 101,139, 84, 151bp로 같은 기간 10~30bp확대되며 건설업 디스카운트를 심화시켰다.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가장 큰 배경은 미분양과 미입주로 곤경에 처한 국내 민간건축사업 리스크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 한신정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AA- 등급 4개사의 민간건축 매출비중은 6월말 현재 33%로 2008년말 41%에서 1년반 동안 큰 폭으로 축소됐다. 반면, A급 이하 27개사는 이 비중이 46%로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국내 부동산경기 침체로 인한 자금 압박에 단비를 뿌려줄 수 있는 해외매출 비중 역시 전자(前者)가 매출의28%, 후자가 11%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금 줄고 만기 짧아져

지난 3년간 A등급 건설회사들은 지방 미분양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수도권 중심 사업장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나 미분양 독(毒)은 이내 수도권까지 퍼져나갔고, 미입주로 변이하며 회사에 들어올 현금을 쉴 새 없이 증발시키고 있다.

차입금 감소도 일부 우량 건설업체들의 얘기다. 매출채권 증가 등으로 인한 운전자본투자 부담은 A급 건설회사 다수의 현금흐름 악화와 차입금 증가를 야기하고 있다. 한신정평 보고서에 따르면, A급 이하 27개 건설회사의 수정부채비율은 6월말 기준 318.8%로 지난해말의 313.5% 대비 더욱 높아졌고, 같은기간 운전자금 회전율은 2.7회전에서 2.5회전으로 더 짧아지는 모습을 나타냈다.

실제 두산건설(011160)의 경우 올 상반기에 지난해 연간 수치를 능가하는 4540억원의 운전자본투자로 현금이 빠져나가면서 5230억원의 영업현금흐름(NCF)적자를 냈다. SK건설과 한화건설도 각각 1280억원과 2519억원의 운전자본투자 부담을 지면서 417억원과 2628억원의 NCF 적자를 기록했다. PF 우발채무의 만기는 더욱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업평가가 최근 36개 건설회사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년 이내 만기도래 예정 우발채무는 지난해 9월 53%에서 올 6월 58.7%로 확대됐다. 건설회사들이 더 짧은 만기로 돈을 빌려와 기존 빚 갚기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크레딧애널리스트는 “A등급 이하 건설업체 가운데 좋아지는 회사를 찾기 어렵다”면서 “미분양 미입주도 문제지만 어느 정도 분양이되고 입주가 되더라도 진행 사업장에서 자금 소요가 계속되면서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있고, 부족자금은 단기자금으로채우면서 만기 역시 점차 짧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착공 사업장 증가도 주목

분양경기 침체를 이유로 계속해서 일정을 미루는 사업장의 증가도 높은 우려를 사고 있다. 땅값 조달에 따른 이자비용뿐만 아니라, 지가하락으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까지 염려될 만큼 시장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자문위원은 “예전에는 돈을 빌려 땅을 사 놓은 상태에서 사업 일정이 지연되더라도 지가상승으로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다. 연 이자가 8%이고, 사업이 1년 늦춰졌다 하더라도 땅값이 그만큼 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부동산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은 다르다”면서 “재고자산이 쌓인 상태에서 롤오버(차환)가 안 되면 아주 힘들어질 수있다”고 우려했다.

미착공 사업장 증가는 최근 17개월째 지속된 `지방 미분양 세대수 감소`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한 자문위원은 “미분양 세대수 감소 배경은 사실 단순하다”며 “미착공 PF를가지고 가면서 분양에 나서지 않다보니 미분양도 더 늘어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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