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신선식품 배송업체 오아시스의 11번가 인수전이 협상 초기부터 답보 상태에 빠졌다. 11번가의 재무적 투자자(FI) 중 실질적으로 매각을 주도하는 사모펀드(PEF) H&Q코리아가 풋옵션 등 원금 회수 수단을 계약에 포함할 것을 협상 시작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어서다. 11번가의 기업공개(IPO) 실패 이후 자금이 묶인 까닭에 오아시스와의 지분 거래에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는 모양새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 매각의 중추인 H&Q는 지난주 오아시스 측과 지분교환 논의를 위한 미팅을 진행했다. 지난달 초부터 물밑 접촉을 이어오던 오아시스와 H&Q가 기본적인 거래 조건을 처음 주고받은 자리다. 11번가 FI는 국민연금(3500억원), H&Q(1000억원), MG새마을금고(500억원) 등이지만 매각을 실무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대상인 H&Q에 제안이 먼저 들어간 상황이다.
협상 자리에서 H&Q는 거래 전제 조건으로 자금회수 보장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요구 방향은 기업공개(IPO) 확약 및 풋옵션(주식 매도 권리) 등 11번가 FI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수단을 계약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11번가 FI 측이 제안 받은 M&A 방식이 현금 매각이 아니라 지분 교환인 만큼, 합병 대상인 오아시스의 IPO 성공 여부가 자금회수의 주요 수단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향후 IPO 과정에서 생길지 모를 변수에 대한 리스크 대응 수단을 확실히 보장 받으려는 셈이다.
H&Q 측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11번가 FI들이 강제 매각 절차를 밟게 된 배경과 무관치 않다. FI들이 5000억원을 투자해 11번가 지분 인수에 나섰던 지난 2018년에 최대주주인 SK스퀘어는 콜옵션을 계약 조건으로 걸고 5년 내 11번가를 상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1번가는 영업환경 악화와 실적 부진에 약속 기한 내 상장하는 데에 실패했다. 여기에 SK그룹의 자금난이 겹치며 SK스퀘어는 FI 지분을 되사들이는 콜옵션을 포기했다.
SK측이 지분을 되사줄 거라고 기대했던 FI들은 계약에 포함된 드래그앤콜(동반매각) 권한을 행사해 강제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적자 누적으로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11번가 매각은 답보 상태다.
다만 11번가 FI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오아시스가 쉬이 수용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오아시스의 주요 주주인 UCK파트너스와 한국투자파트너스 측이 11번가 지분 인수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두 회사의 지분 교환은 오아시스 입장에서도 시너지가 있고, 11번가 FI들에게는 기업가치를 깎지 않고 자금 회수할 길이 열린 좋은 딜”이라며 “다만 오아시스 주주들이 11번가 FI 측에 마냥 우호적인 조건을 책정해주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