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역대급 ‘세수펑크’를 메우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끌어 쓸 계획이라고 한다. 올해 세금이 잘 안 걷혀 50조~6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세수부족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중앙정부가 채워 넣어야 할 몫은 60%(30조~36조원)인데 불용액(10조원)과 세계잉여금(6조원)을 우선적으로 투입하고 나머지는 외평기금을 끌어와 메운다는 것이다. 이 경우 외평기금 투입액은 최대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금 돈을 빼서 일반회계 예산으로 쓰는 것이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도 아니다. 기금은 특수 목적에 쓰도록 용도가 제한된 자금이다. 그중에서도 외국환평형기금은 통화가치 안정을 도모하고 환투기를 방지할 목적으로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위해 조성한 자금이다. 쉽게 말해 ‘외환 방파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돈을 끌어 쓰는 것은 비유하자면 공사장에 석재가 모자란다고 바닷가 방파제에서 돌을 빼내 오는 것과 같다. 당장은 별 문제가 없다고 해도 비바람이 불고 폭우가 몰아치면 파도가 넘치고 제방이 무너질 수 있다.
정부는 여유 자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달러 강세로 외환 매도(원화 매입) 거래를 했기 때문에 원화가 많이 비축돼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외평기금에 관한 한 여유자금이란 설명은 적절치 않다. 외평기금은 본래 여유자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곳이다. 방화용 물탱크는 언제 불이 날지 모르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항상 물을 가득 채워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가채무를 늘리지 않고 세수 부족을 메운다는 것도 허황된 설명이다. 외평기금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해 조달하는데 외평채는 세금으로 이자도 물고 원금도 갚아야 하는 국가채무다. 이쪽에서 빚 내서 저쪽 빚을 갚는 카드빚 돌려막기와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이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기금 여유재원 등을 활용해 국고채 발행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것과 같다. 온당치 못한 편법으로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무력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시변통에 급급하지 말고 항구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부자감세로 약화된 세수 기반을 보강하는 한편으로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