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임대차 시장에 한파가 불고 있다. ‘월세의 가속화’를 달리던 월세마저 하락세로 전환했다. 이자 부담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까 봐 집주인들은 전전긍긍이다. 18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전국 월세 시세는 전달보다 0.11% 내렸다. 월세 시세가 전달보다 떨어진 건 2019년 10월 이후 3년1개월 만이다.
|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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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월세 시장은 전세 시장 하락 반사 이익을 누려왔다. 전세 대출 금리 상승으로 전세 수요가 월세 시장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10월 신고된 주택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은 51.8%로 전세를 넘어섰다. 월세 계약이 전세 계약보다 많아진 건 통계 집계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이런 이유로 올해 전세 시세가 전국 평균 3.2% 떨어질 동안 월세는 1.2% 상승했다.
부동산 시장에선 전세 시장 침체가 임계점에 달하면서 월세 시장까지 충격이 옮겨갔다고 본다. 전셋값 하락과 매물 누적이 심화하면서 월세 시세까지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미다. 부동산 빅데이터 회사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건은 16일 기준 8만5784건으로 6개월 전(5만9337건)보다 44.5% 늘었다. 특히 월세는 1만6168건에서 3만1251건으로 반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월세 전환 수요가 늘기도 했지만 최근엔 매물 누적 현상까지 생긴 영향으로 해석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한 달만 봐서 이런 흐름이 장기화할 건지 예상하긴 이르다. 한 분기 정도는 흐름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최근 임대차 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공급이 늘고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임대차 시장에서 세입자 우위가 공고해질 수 있다고 본다. 가뜩이나 집값·임대료 하락, 고금리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임대인에겐 악재다. 낮아진 월세가 전셋값을 끌어내리고 깡통전세(보증금이 집값에 육박하거나 집값을 넘어서는 것) 우려가 확산할 수 있다.
|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에 아파트 시세표가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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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하락이 장기화한 광역시 대도시에선 이미 중·대형단지에서까지 깡통전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 682가구 규모 대구 북구 고성동3가 ‘오페라 트루엘 시민의숲’에선 지난달 4억2800만원에 전용 84㎡형 매매 계약이 체결됐다. 올 5월 신고된 이 아파트 같은 면적 전세가(4억5000만원)에도 못 미친다. 780가구 규모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 더샵그린워크 3차 18단지’에서도 전용 84㎡형이 연초 전세가 수준인 6억5000만원에 이달 매매됐다. 이런 주택은 집값이 반등하지 않으면 전·월세 계약 만기 시 보증금 반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서울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갈수록 ‘역 월세’가 확산하고 있다. 목돈을 마련하지 못해 한 번에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낮춰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계약을 갱신하는 대가로 세입자에게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행태다. 최근 전·월세 하락으로 세입자들 목소리가 커지면서 역 월세는 갈수록 성행하고 있다.
함영진 랩장은 “월세까지 매물이 누적되면 세입자의 교섭력은 세질 수밖에 없다”며 “이에 따라 전·월세 가격도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