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17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어떤가. 국경을 경계로 한 장벽은 이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경쟁이 대표적이다.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창설한 안보회의체 쿼드(QUAD)는 군사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공급망 확보 같은 경제 문제까지 폭넓게 협력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아닌 미국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직접 유치하려는 건 이전 경제정책 기조와는 확연히 다르다. 비즈니스 세계에 국경 장벽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경제 안보’는 요즘 최대 화두다.
전쟁이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중 갈등의 확장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 반미를 고리로 뭉친 중국·러시아 진영의 대결 구도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외교가 안팎에서는 2017년 나온 베스트셀러 ‘지리의 복수’(The Revenge of Geography)가 더 현실성 있다는 평가가 있다. 제2의 헨리 키신저로 불리는 지정학의 대가 로버트 카플란이 쓴 책이다.
기자가 해외 외교 빅샷들을 만날 때마다 놀라는 게 있다. 한국이 생각보다 국제정세의 변방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한국은 쿼드에 참여하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쿼드 가입 여부는 한국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인도·호주 정도면 인도태평양 정책이 충분하다는 계산이 섰을 법하다. 한국은 중국 눈치를 봤겠지만, 정작 미국은 개의치 않았다는 해석마저 가능하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난무하는 퍼주기 공약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진정한 경제 공약은 성장을 이끄는 기업들이 세계 무대를 누빌 때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외교야말로 정부가 앞장서야 할 일 아닌가. 이를 깨닫지 못하면 카플란이 지적했듯 한국을 향한 지리의 복수가 현실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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