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미·중·일·러 틈바구니서 살아남기

'경제 안보' 중심 둔 외교노선 재설정 필요
전략적 모호성→전략적 명확성 전환해야
  • 등록 2022-02-17 오전 4:00:00

    수정 2022-02-17 오전 4:00:00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베스트셀러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가 나온 게 2005년이다. 자유무역과 기술발전으로 상품·서비스의 장벽이 사라진 세계화 시대를 프리드먼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런데 17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어떤가. 국경을 경계로 한 장벽은 이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경쟁이 대표적이다.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창설한 안보회의체 쿼드(QUAD)는 군사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공급망 확보 같은 경제 문제까지 폭넓게 협력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아닌 미국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직접 유치하려는 건 이전 경제정책 기조와는 확연히 다르다. 비즈니스 세계에 국경 장벽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경제 안보’는 요즘 최대 화두다.

전쟁이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중 갈등의 확장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 반미를 고리로 뭉친 중국·러시아 진영의 대결 구도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외교가 안팎에서는 2017년 나온 베스트셀러 ‘지리의 복수’(The Revenge of Geography)가 더 현실성 있다는 평가가 있다. 제2의 헨리 키신저로 불리는 지정학의 대가 로버트 카플란이 쓴 책이다.

안타까운 건 국제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감에도 한국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교차하는 곳이 한국이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취약한 나라다.

기자가 해외 외교 빅샷들을 만날 때마다 놀라는 게 있다. 한국이 생각보다 국제정세의 변방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한국은 쿼드에 참여하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쿼드 가입 여부는 한국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인도·호주 정도면 인도태평양 정책이 충분하다는 계산이 섰을 법하다. 한국은 중국 눈치를 봤겠지만, 정작 미국은 개의치 않았다는 해석마저 가능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 기조가 ‘전략적 모호성’이다. 미국의 안보와 중국의 경제를 다 취하겠다는 것인데, 현실은 녹록지 않은 셈이다. 존재감이 약한데 태도까지 모호하다면 결론은 뻔하다. 외교 기조를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전환하는 건 그래서 시급하다. 각 주요국에게 해줄 수 있는 점과 해줄 수 없는 점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한국 외교는 예측 가능하다는 인식이 싹트고,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이 커질 수 있다. 경제 안보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이것부터 해야 한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난무하는 퍼주기 공약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진정한 경제 공약은 성장을 이끄는 기업들이 세계 무대를 누빌 때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외교야말로 정부가 앞장서야 할 일 아닌가. 이를 깨닫지 못하면 카플란이 지적했듯 한국을 향한 지리의 복수가 현실화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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