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가 채널 돌리면 다 똑같은 중계…왜?

세계 1위 서채현 선수조차 야구에 밀려
비인기 종목 중계 중단 잇따라
방송국 공적책무 져버린 이유 해명해야
  • 등록 2021-08-07 오전 2:34:39

    수정 2021-08-07 오전 2:34:39

지난 3일, 클라이밍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박가영 씨(32세)는 남자 스포츠 클라이밍 예선전을 보다 답답함을 느꼈다. KBS2에서 중계를 해줬지만 한국 대표로 출전한 천종원 선수의 경기 직후 TV 중계가 끊겼고 이후 세부 종목인 리드 경기는 역도 결승전에 밀려 중계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박씨는 해설이 없는 iMBC에서 나머지 경기를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서채현 선수 역시 지난 4일 여자 스포츠 클라이밍 예선전에서 전체 순위 종합 2위를 달성했지만, 동시간대 중계된 야구 준결승전에 밀려 아예 TV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클라이밍 첫 정식종목 채택 이후 첫 올림픽이고, 서채현 선수가 2018년부터 세계 선수권 대회 1위를 지켜왔던만큼 기대를 품었던 팬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약 1만 5000명은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해설 없는 경기를 관람했다.

지난 4일 야구가 시작한 지 1시간이 흐른 오후 8시, 약 1만 5천명이 온라인으로 스포츠 클라이밍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KBS 온라인 채널 캡처)


야구, 축구 시작하면 비인기 종목은 중계 중단

야구, 축구를 하는 날에는 다른 종목을 아예 볼 수 없다는 시청자들의 불만도 거세다. 메달 결정전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달 25일 이대훈 선수의 은퇴전이기도 했던 68kg 이하급 남자태권도 동메달 결정전 역시 축구 B조 2차전에 밀려 케이블TV 채널 한 곳에서만 볼 수 있었다.

또 지난 달 28일, 허광희 선수는 배드민턴 남자단식 경기에서 세계 랭킹 1위 일본의 모모타 겐토를 제압하며 드라마를 썼지만, 남자축구 A조 일본-프랑스 경기에 밀려 케이블 스포츠 채널에서조차 볼 수 없었다. 같은 시간 지상파 3사는 모두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 결승전을 중계하고 있었다.

방송사 3사의 몰빵 중계에 대한 불만은 축구, 야구와 여자 배구가 동시 진행된 지난 달 31일에 폭발했다. 이날 30분 간격으로 야구 B조 오프닝 라운드와 여자 배구 한일전 그리고 축구 8강이 치러졌다.

그러나 지상파에서는 전부 축구 중계를 했고, KBS1마저 야구를 중계하며 여자배구는 온라인과 케이블 방송으로만 볼 수 있었다. 약 30만명이 온라인으로 경기를 관람했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여자 배구 어디서 보나요?’라는 글이 쏟아졌다.

올림픽을 보면서 배구와 체조 경기 등 새로운 종목들에 흥미가 생겼다는 대학생 이지민 씨(24세)는 “올림픽은 다양한 스포츠 종목를 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다”라며 “평소에도 볼 수 있는 축구와 야구가 아닌 다양한 종목들을 TV에서 관람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SNS에서 온라인 중계 일정을 알려주는 계정을 통해 비인기 종목들을 챙겨봤다고 전했다.

매일 모든 종목의 중계 사이트를 소개해주는 계정 (출처=트위터)


지상파 방송사들 공적 책무 져버린 이유 해명해야

이번 도쿄 올림픽에는 우리나라 선수 232명은 총 33개의 종목 중 29개의 종목에 출전했다. 하계 올림픽은 종목이 15개인 동계올림픽에 비해 종목 수가 많아 지상파의 ‘몰빵 중계’가 더욱더 치명적이다.

2020 도쿄올림픽 중계 방송은 주요 종목 순차편성 및 일부 종목 독점 중계를 협의해 중복 중계를 줄여나갔던 2012년과 2016년 올림픽 중계 방송에 비해서 오히려 퇴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같은 상황을 우려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14일 도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중계방송 시 채널·매체별로 순차적으로 편성해달라”고 권고했다.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방송법 76조 5항 '중계방송 순차편성 권고' 조항에 따라 방통위 권고가 아니어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순차편성를 지킬 법적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성옥 교수는 “방송법이 도입된 2012년 이후 매 하계 올림픽마다 지상파 방송국들은 서로 종목을 분담하며 중복 편성 비율을 줄이기 위해 서로 협의를 해왔다"며 "이번 올림픽 역시 방송사들은 자율적으로 중복 편성 비율을 줄이고 다양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올림픽마다 진행한 협의를 올해만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지상파 방송사들이 공적책무를 이행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계권료 상승 등의 불가피한 이유가 있으면 국민들도 이해를 할거다. 그러나 중복 편성를 감행한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시청자들은 다음 올림픽에는 (중복 편성 문제를) 개선할 거라는 답변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 스냅타임 박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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