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재등장한 '여성을 위한 정당'
대한민국 여성 정당의 역사는 초대 상공부 장관인 임영신씨와 이은혜 씨등이 1945년에 주도한 ‘대한여자국민당’에서 시작한다. 대한여자국민당은 남녀평등권을 표방하고, 여성의 힘을 모아 남성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민주사회의 건설, 여성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민주경제의 확립 등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창당 이후 당원 수는 약 30만 명에 이르렀고,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도 기록했다. 하지만 임 전 장관이 1952년부터 연거푸 세 차례 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후 당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당원의 이탈이 증가하면서 명맥만 유지하던 대한여자국민당은 1960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성의당은 대한여자국민당 이후 약 60년 만에 등장한 여성 정당이다.
여성의당이 짧은 기간에 창당에 성공한 이유는 간단하다. 국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여성 의원수는 단 51명, 전체의 17%에 그친다.
“2030 여성의 울분이 만든 기적”
여성의당이 창당을 결심한 계기도 이와 맞닿아있다.
당원 모집이 짧은 시간 내에 가능했던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은 “우리 정치사에서 유독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한 2030 여성들의 분노와 울분이 60년 만에 만든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여성의당 당원 구성은 여성이 99%를 차지한다. 전체 당원 가운데 2030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는다고 김 위원장은 전했다.
그는 “각종 범죄에 노출된 여성들이 국민청원을 통한 이슈화, 거리 시위 등으로 불만을 표현했지만 현실적으로 해결된 것이 없었다”며 “5개 시도당에서 9일 만에 8200명 이상의 당원이 모집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폭발적 에너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창당했다는 기쁨보다 창당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크다”면서도 “하지만 이 압박감은 스트레스가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지지를 한 만큼 무엇이든 빨리 해내고 싶은 성취감의 욕구다”라고 강조했다.
여성의당 당원인 전이경(22·여)씨는 기존의 정당에서 여성 관련 의제를 소홀하게 다룬다고 생각해 무력감을 느꼈다.
전씨는 “기본적으로 국회에 여성의원 수가 적다보니 여성 인권에 진심으로 관심을 두고 정책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며 “이제는 여성이 직접 나서서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도모하는 당이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여성의당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정지예(33·여)씨 역시 여성들만을 위한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성의당 당원이 됐다.
많은 여성 아우르는 정책 입법화 예정
실제로 여성의당은 주로 여성 관련 의제와 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김 위원장은 “여성의당이 정식 출범하기 전에 가장 먼저 낸 성명은 ‘텔레그램 N번방 성 착취 사건’이었다”며 “IT(정보기술) 강국이라는 빛에 가려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과 개선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존의 정당과 여성의당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오직 여성 전문가와 여성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인 대책에 중점을 둔 정책을 구상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여성의당의 움직임에 함께 하는 이들도 많다. SBS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와 ‘궁금한 이야기 Y’ 등 다수 프로그램에서 범죄 심리 분석가로 출연해 이름을 알린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여성의당 정책에 대해 자문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일 여성의당의 스트리밍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성범죄 관련 정책에 대해 함께 논의하기도 했다.
이 외에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를 집필한 김진아 작가는 여성의 당에 먼저 연락을 취한 뒤 현재는 실무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의 이민경 작가 역시 여성의당과 연대활동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성의당은 여성 모두에게 해당하는 정책을 입법화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유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관련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성범죄뿐 아니라 여성 노동, 예술계의 인식전환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던 차별적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구상 중”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스냅타임 이다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