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청문회를 봐온 사람이라면 청문회 후보자를 향하는 의혹 중에도 매번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있고, 그런 의혹에 답하는 과정에서 후보자들이 뱉어낸 ‘어록’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청문회 주요 의혹과 유명 발언을 중심으로 인사청문회를 훑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청문회 단골 의혹 3종 세트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2000년 6월 현행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후로 가장 자주 등장한 의혹은 바로 ‘위장 전입’이었다. 위장 전입이란 부동산을 사거나 자녀의 학군·학교를 고르려는 등의 목적을 갖고서 본인이나 가족이 실제로 살지 않는 곳에 주소를 등록하는 행위로 주민등록법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위장 전입 행위는 적지 않게 부동산 투기와 연관성을 가지며 실제로 청문회에서 위장 전입 의혹은 부동산 투기가 아니냐는 물음을 항상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다.
인사청문회 첫 낙마자인 장상 총리 후보자의 결격 사유도 부동산 투기 목적의 위장 전입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김대중 정부 2명(장상, 장대환), 이명박 정부 4명(박은경, 김병화, 천성관, 신재민), 박근혜 정부 3명(이동흡, 김병관, 안대희), 문재인 정부 1명(조동호)까지 총 10명 후보자의 낙마 사유에 위장 전입이 포함돼 있었다. 또 위장 전입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청문회를 통과한 후보자 수도 점차 늘어났다. 위장 전입을 한 고위공직자의 수가 가장 많았던 이명박 정부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총 16명이 위장 전입 이력이 있었고 이중 4명이 낙마했다. 위장 전입이 처음으로 청문회 이슈가 됐을 때로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는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부동산 투기 목적이 아닌 자녀 학교 관련 건에는 좀 관대해도 된다는 관행까지 생긴 것처럼 보인다.
‘세금 탈루’도 빼놓을 수 없는 청문회 단골 의혹이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총 12명의 낙마자(장대환, 이기준, 남주홍, 이춘호, 천성관, 김병화, 신재민, 이동흡, 김병관, 안대희, 조대엽, 박성진)가 세금 탈루 의혹을 받았다. 가끔 방송에서 잘 나가던 유명 연예인이 탈세 혐의로 공식 사과를 하고 오래 자숙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12명은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청문회에 자주 등장하는 의혹인 만큼 임대 소득 축소 신고, 재산 축소 신고, 다운계약서 작성, 주식 신고 누락, 증여세 탈루 등 다양한 유형의 세금 탈루 사례가 등장했다.
이외에도 논문 표절과 중복 게재, 본인 또는 자녀의 이중국적, 자녀 병역 비리나 군·취업 관련 특혜, 고액 스폰서 혐의 등의 의혹이 청문회마다 후보자들을 따라다녔다.
위장 전입 의혹에 “땅을 사랑해서”, 답변 못하는 후보자 향해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청문회가 남긴 ‘어록’들도 있다. 김대중 정부의 장대환 총리 후보는 자녀 진학 관련 위장 전입 의혹에 “맹모삼천으로 생각해달라”고 해명한 것이나, 이명박 정부의 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가 투기 목적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서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이라 답변한 것은 유명한 사례이다.
박근혜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 윤진숙 후보는 “떨려야 하는데 제가 워낙 발표를 많이 했기 때문에...”라며 청문회에 자신 있는 듯한 모습을 내비쳤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 대한 의혹뿐 아니라 해양수산부 관련 지식에 대한 답변에는 “잘 모르겠다”로 일관하며 여야를 막론하고 질문하는 의원들을 한숨짓게 만들었다.
직설적인 반문이 화제가 된 후보자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유방암 수술이 특혜 진료가 아니었냐는 의혹을 받아 수술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 받았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질의자인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에게 “제가 '윤한홍 의원님 전립선암 수술 하셨습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느끼시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부당한 의혹에 대한 반감을 표했다.
질문하는 위원들의 발언 중에도 어록에 남은 것들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당시엔 부처 관련 기본 질문에도 웃으며 “모른다”, “공부하는 부분이 많았다”며 답하지 못하던 후보자에게 “아휴 참 답답하구만 저까지”(신성범 새누리당 의원), “큰일났네, 큰일났어”, “뭐가 시험에 나올지 모르니까 지금 떨리지 않는 것 아닙니까, 공부 안 했기 때문에”(김춘진 민주통합당) 등의 말들이 쏟아졌다.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선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이 야당 의원들에게 “사퇴하세요”, “멍텅구리들”이라고 발언하자 “닥쳐, 닥치세요”라고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맞받아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후보자 개인 신상털이, 여야 싸움이 주가 된 청문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여태껏 청문회의 자질 검사를 흠결 없이 통과한 후보자는 많지 않았다. 이는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성, 준법정신 결여 문제로 비춰지지만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능력과 취임 이후의 비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신상털이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지적도 전부터 존재해왔다. 또한 여야가 자기 당 후보자는 감싸고 다른 당 후보자는 밑도 끝도 없이 반대하며 서로 언성을 높이는 모습이 어느 순간 청문회의 일상이 돼버렸다. 종종 결격 사유가 있거나 의혹이 다 풀리지 않은 후보의 임명을 강행하는 대통령들의 모습도 빠질 수 없는 청문회 풍경에 속한다.
이런 청문회의 모습이 현실보다 콩트에 가까워 보는 이에게는 웃음을 줄지 몰라도, 행정부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국회가 검증하여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본래의 목적은 제대로 달성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고위공직자 임명 시즌만 되면 '청문회 무용론'이 등장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청문회가 대중의 가십거리로만 남지 않고 민주주의의 한 작동 원리로서 기능하려면 후보자의 여야 소속을 가리거나 개인 신상에만 집착하지 않는 대신, 누가 됐든 그 자질과 능력을 두루 점검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또한 대통령은 국회의 임명동의안 채택 여부를 고려하고 제기된 의혹을 후보자 본인이 명확하게 해명하고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했을 때에만 임명을 하는 등 청문회를 '개혁'하기 위한 다방면의 협조가 필요하다.
인사청문회가 2000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벌써 20년째 시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청문회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