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병원' 잡으려다 네트워크병원 잡을라…의료계 '근심'

네트워크병원 '의사 사무장병원' 몰아가 '의사면허 취소' 근거 마련
"비의료인 개설하는 사무장병원과 네트워크병원은 본질부터 달라"
네트워크병원, 환자 접근성 확대 및 의료 질 강화 등 장점
관련 법안 헌법소원 절차 진행 중…판결 후 논의 필요
  • 등록 2018-09-17 오전 2:00:52

    수정 2018-09-17 오전 2:00:52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지섭 기자]“사무장병원 근절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네트워크병원을 ‘의사 사무장병원’으로 몰아가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네트워크병원이 합리적인 가격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기술 공유를 통해 의료 질을 높일 수 있음에도 이를 규제하는 것은 국가 의료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16일 한 네트워크 병원 관계자는 “사무장병원을 근절하기 위한 법안이 도리어 의료계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무장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사와 의료법인 등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불법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검증되지 않은 질 낮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불필요한 부분까지 과잉진료하는 등 국민건강보험 재정 낭비로 이어질 수 있어 의료법에서는 사무장병원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비의료인이 아닌 의사가 운영하는 ‘네트워크병원’까지 ‘의사 사무장병원’으로 몰아가는 법안이 통과를 앞두고 있어 의료 현실을 외면한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다. 네트워크병원은 여러 지역에서 같은 이름을 쓰고, 병원지원회사(MSO)가 마케팅·경영·홍보 등 진료 외 분야를 전담하는 곳을 의미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및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안’이 오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비의료인이 의료인에게 명의를 빌려 불법 개설하는 사무장병원은 물론, 현행법상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도록 하는 의무규정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제재규정이 없다며 이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에게 명의를 빌리거나 빌려주는 행위에 대해 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는 물론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고 10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형 등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최근 천정배 미래평화당 의원이 발의한 사무장병원 처벌규정 강화 법안에 힘입어 지난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사무장병원 근절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의료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법이라고 지적했다. 비의료인이 개설한 사무장병원과 의료인 간 동업 관계로 운영하는 네트워크병원을 동일하게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 의료계 한 관계자는 “사무장병원은 의료인 아닌 사람이 의료인의 면허나 명의를 빌려 불법 개설하는 곳을 의미하는 것인데 ‘의사 사무장병원’이라는 말부터가 모순된 개념”이라며 “비의료인이 개설한 사무장병원과 의료인이 개설한 네트워크병원은 본질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의료인 간 동업 형태로 이뤄지는 네트워크병원은 규모의 경제로 원가를 절감해 국민이 낮은 가격에 의료서비스에 접근하도록 돕고, 임상경험·의료기술 등을 공유해 소속 의료인들의 진료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라식전문 안과병원이나 척추·관절 전문병원 등이 3차 의료기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네트워크병원의 순기능이라는 것. 또 미국·일본 등 대부분 국가는 의료경쟁력 강화 및 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해 의료기관을 복수로 개설해 협력·운영하는 것이 가능한데, 의료인이 복수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것을 모두 금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그는 꼬집었다.

법조계에서는 의사 한 사람당 한 개의 병원을 세우도록 제한하고, 의료인의 명의 대여를 금지하는 법안이 현재 헌법소원심판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에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헌법소원심판에서 위헌이 나올 경우 이번 개정안은 아무 의미 없는 법안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판결을 기다린 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일각에서는 사무장병원 처벌을 강화한다는 구실로 요양급여환수처분 소송에서 줄줄히 패소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법을 통해 환수장치를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공단은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를 받은 요양기관에게 해당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를 네트워크병원에도 적용해 요양급여를 되돌려 받고 있는데, 이에 반발하는 병원들이 요양급여환수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잇따라 병원 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의료인 간 동업이나 투자는 사무장병원이라고 볼 수 없고 의료인이 한 진료행위에 대해서는 요양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관련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건강보험재정을 안정시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의료인을 통해 정당한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보험급여 비용을 환수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법원의 판단을 뒤집기 위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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