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효율성 명목으로 내팽겨진 원전 인부 건강문제

  • 등록 2014-04-04 오전 5:35:04

    수정 2014-04-04 오전 6:09:12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방사선관리구역인 원자력발전소에서 일 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방사선안전재단으로부터 20시간 가량 안전교육을 받고 혈액검사와 혈소판 수치 점검 등을 해 ‘일해도 좋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아야 한다. 방사선피폭량 검사 등 매년 정기 건강검진을 받아 문제가 없어야 한다.

원자력안전법은 이들 ‘방사선작업종사자’에게 연간 20mSv까지의 피폭량은 허용된다고 정한다. 일반인의 연간 피폭허용량은 1mSv이다.

그러나 원전 청소나 건물 및 시설 보수 등 이른바 ‘작업 인부’로 불리는 이들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는다. 원전 출입을 할 때 의사 소견이 없어도 되며 1시간의 필수 안전교육만 받으면 된다. 특히 정기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원전 수시출입자로 분류돼 원안법상 연간 피폭허용량이 12mSv이다. 일반인보다 12배의 피폭량이 더 허용되는 셈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제도가 지난 1978년 국내 원전이 처음 가동된 이후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국내 원전의 수시출입자는 15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수시출입자 제도는 문제가 있다. 국제기구인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방사선방호종사자’와 ‘일반인’ 등 2개 기준만 적용할 것을 권고한다. 방사선과 관련한 일을 해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자는 어느 정도의 피폭을 허용하되 높은 안전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국내 원전 인부들에게 적용되는 ‘수시출입자’ 제도는 이 기준에 명백히 어긋난다. 일반인 보다 훨씬 많은 피폭이 허용되지만 제대로 된 안전관리는 못 받는 것이다. 수시출입자 제도를 시작한 일본도 최근 이 제도를 폐지해 지금은 우리나라만 적용하고 있다.

수시출입자 제도는 업무의 효율성 및 비용감축 등과 맞닿아 있다. 피폭위험이 별로 없는 원전 청소 아주머니까지 정기 건강검진을 해주면 원전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부담은 커진다.

그러나 원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원전에 들어가면 예외 없이 방사선작업종사자로 봐야 한다”(한수원 산하 방사선보건연구원 관계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도 뒤늦게 수시출입자 제도의 개선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1년 울진원전에서 일하던 인부 32명이 방사선 피폭된 게 알려진 이후 인부들의 공식적인 피폭사고는 없었다. 김성연 월성원자력본부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수시출입자들은 정기검사를 안 받기 때문에 자신의 ‘피폭량’을 모른다”고 말했다. 원전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건 정부라면, 원전 인부들의 건강에도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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