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방사능 공포 "신뢰가 우선이다"

  • 등록 2013-09-02 오전 6:00:00

    수정 2013-09-02 오전 6:00:00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누출 이후 방사능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정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정부는 “과학적 판단에 근거해 방사능 물질이 극미량 검출된 수산물은 섭취해도 안전한 수준이다”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극미량이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산 수산물의 위험성에 대해 정반대의 시각이 팽팽하게 맞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양 측의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안전한 수준이다’라는 표현에는 ‘위험할 수 있다’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교통사고 사망 위험이 연간 1만명당 1.4명이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늘 교통사고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교통사고 사망위험이 있으니 차를 타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위험성이 있더라도 편의성을 상회하지 않는다면 그 위험성은 감수한다는 얘기다.방사능 물질도 마찬가지다. 방사능 물질이 극미량 검출된 수산물을 매일 먹는다고 모두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예 안 먹는 것보다는 위험성이 커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불안감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동안 늘 과학적인 판단만을 토대로 정책을 펼쳐오지는 않았다. 얼마 전 ‘벤조피렌’ 라면 사건 당시 식약처는 “안전한 수준”이라는 과학적 판단을 내렸음에도 ‘국민 우려’를 이유로 뒤늦게 해당 제품에 대해 회수를 결정했다. 지난 2009년 식약처는 석면이 함유된 탈크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 1122개 품목에 대해 판매를 금지했는데, 이때에도 과학적 판단보다는 ‘소비자 불안 해소’를 이유로 들었다.

국민들이 “정부가 국내 기업은 과감하게 대처하면서 유독 일본 식품만은 외교마찰을 우려해 눈치를 본다”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일본산 수입식품에 대해 미국이나 EU와 유사한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인접 국가인 중국과 대만이 우리보다 엄격한 수입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과학적 판단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먼저 국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단지 ‘괴담’으로 치부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은 정부의 과학적 판단이 우선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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