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18일자 18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박 모 씨(25세)는 18개월 된 딸아이를 올 3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박 씨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임신 중인데다 온 종일 육아에 시달리는 것보다 몇 시간이라도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결정엔 지난달부터 시작된 정부의 무상보육 영향이 컸다. 공짜인 줄 알았던 보육비는 간식비,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한 달에 약 14만원이 들어간다. 그래도 원래 내야 했던 30만원이 넘는 보육비를 생각하면 비용이 줄어든 것이다.
무상보육은 박 씨의 보육비 부담을 덜어줬을 뿐 아니라 소비자물가를 낮추는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올랐다. 무상보육으로 보육비(어린이집)가 33.9%, 유치원 납부금이 11.1%, 무상급식을 하는 학교가 늘어나 학교 급식비가 19.6%나 떨어졌다. 전체 물가를 떨어뜨리는데 0.48%포인트나 영향을 줬다.
물론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다. 박 씨는 임신 중에는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요즘 가장 당기는 과일을 사려 했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작은 수박 한 통은 3만원에 가깝고, 딸기(1kg)나 참외(중간사이즈 4~5개)도 1만원은 넘게 줘야 한다. 거기에 올라버린 시내버스, 전철요금 등을 고려하면 아이 우윳값 남기기도 빠듯하다.
체감물가가 높은 편이지만 복지정책으로 어쨌든 물가는 하락했다. 복지정책이 물가를 떨어뜨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무상급식 등으로 5%를 넘길 뻔했던 물가상승률이 4.7%에 그쳤다. 포퓰리즘이라며 무상복지를 반대했던 정부도 이럴 때는 입을 다문다. 물가가 떨어졌다는 것은 정부로선 그만큼 정책 부담을 던다는 의미다.
다만 통화량을 조절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한국은행은 무상복지가 소비자물가 하락에는 효과가 있지만, 실제 물가상승 압력을 줄이진 못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선 “무상급식은 급식가격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비용지출의 주체만 가계에서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것이므로 실제 인플레 압력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밝혔다.
복지정책이 소비자물가를 낮춰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완화하고 물가를 담당하는 정책 당국자의 마음을 놓이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가격 자체가 하락하거나 시중 통화량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가가 실제 하락하는 것이 아닌데도 숫자만 낮아져 물가가 하락한 것처럼 착시효과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물가정책의 근거는 숫자로 제시되는 지표인데 복지정책으로 혼란이 생기게 되는 꼴이다.
이런 복지정책으로 말미암은 물가 착시효과는 1년이 지나야 사라진다. 이듬해 같은 달엔 물가상승의 기준점이 무상복지로 낮아진 지점에서 오르내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