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부활 '특명' 받고…'에너지 비정치화' 역할 앞장[차관열전]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원전 현장직에서 ‘주경야독’하며,
에너지정책 총괄하는 고위관료로…
‘에너지의 정치화’ 소용돌이 속에,
외유내강형 지략가로서 해법 고심
  • 등록 2023-12-26 오전 5:00:00

    수정 2023-12-26 오전 5:00:00

차관의 사전적 정의는 ‘소속 장관을 보좌해 소관업무와 공무원을 지휘하는 정무직 공무원’입니다. 정무직이면서도 실질적인 행정적 업무도 수행하기에 안팎살림을 모두 맡고 있지만, 장관의 그늘에 가려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데일리는 아직은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각 중앙행정부처의 차관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김형욱 강신우 기자] 정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자리에는 막중한 부담이 뒤따른다. 최근 수년간 에너지의 정치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탈(脫)원전과 함께 공격적인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했지만, 정권 교체를 이룬 윤석열정부는 불과 5년 만에 복(復)원전에 나섰다. 에너지 정책은 큰 부침 속에 방향성을 잃었고, 작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연료값마저 급등하면서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산업부내 최고의 ‘에너지정책통’으로 꼽히는 강경성 전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이 지난 5월 산업부 2차관에 부임하게 된 배경이다.

강경성(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지난 5월18일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로 경북 울진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를 찾아 신한울 3·4호기 건설 진행 현황과 안전관리 방안을 살피고 있다. (사진=산업부)


◇특명받고 복귀한 尹정부 초대 산업비서관


강 차관 취임 당시에도 에너지 정책은 정쟁의 한가운데에 놓여져 있었다. 산업부는 윤석열정부 출범 1년 동안 전 정부가 멈춰 세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비롯한 원전 생태계 활성화에 ‘올인’했으나, 5년간 멈췄던 원전 생태계를 1년 만에 정상 가동은 역부족이었다. ‘에너지 위기가 어느 정부 탓이냐’는 책임공방 속에 에너지 요금 현실화도 진통을 겪으면서 전임인 박일준 산업부 2차관과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사실상 불명예 퇴진했다.

현 정부의 초대 대통령실 산업비서관으로 재직하다 ‘원전 부활’의 특명을 받고 취임한 강 차관의 행보도 바빠졌다. 그는 취임 일주일 만에 첫 현장 행보로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3·4호기 부지를 찾아 건설 준비 현황을 살피고, 관계부처와 협의에 들어갔다. 이전보다 16개월 이상 앞당긴 6월 초에 전원(電原)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을 받아 이곳 부지공사에 착수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결과다.

강 차관의 이력은 입지전적이다. 1965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그는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한 뒤 한국수력원자력 기술직으로 입사했다. 이후 원전 현장을 누비며 주경야독한 그는 울산대 전기공학과에 진학, 기술고시 29회(1993년)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그는 30년 남짓 산업부에서 일하며 에너지관리과장·원전수출진흥과장·원전산업정책과장·석유산업과장 등 에너지 분야 핵심 보직을 두루 거쳤다. 기술고시 출신으로는 드물게 정무적 역량이 필요한 운영지원과장도 역임했다. 이후 원전산업정책관·제품안전정책국장·소재부품장비산업정책관을 거쳐 무역투자실장·산업정책실장·에너지산업실장 등을 지냈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지난 7월31일 세종시 베스트웨스턴플러스호텔에서 2023년 하반기 재외공관 상무관 파견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신임 상무관 원전수출 워크숍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큰 그림 그리면서도 세심한 외유내강형 지략가


강 차관을 잘 아는 동료·후배들은 그를 두고 ‘외유내강형 지략가’라 칭한다. 앞에 나서거나 본인을 드러내지 않지만, 꼼꼼하고 섬세하게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후 1년간 대통령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현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잘 이해하는 것도 큰 강점이다.

산업부 내에서는 ‘서번트(servant, 섬기는)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다. 소탈한 성품의 강 차관은 늘 직원들과 격의 없이 일상사를 나누며 조직을 잘 화합하게 만드는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산업부 관계자는 “누구나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친근감이 있는 선배”라면서 “에너지 분야를 워낙 잘 알다 보니 실무진들이 일을 하는 수월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그의 장점은 국회와의 소통 때도 잘 발휘됐다. 여권의 반대 기류 속에서도 한전의 추가 자구안 마련을 전제로 전기요금 인상을 이끌어내며 한전의 재정 부담을 일부 완화할 수 있었던 것도 강 차관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정부 고위 관료는 “여야가 원전과 재생에너지로 갈려 진흙탕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중심을 잘 잡고 국회와 소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했다.

강경성(왼쪽)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마련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홍보관을 찾아 황주호(가운데) 한수원 사장으로부터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산업부)


◇산적한 현안 속 내년 원전 수출 성과 기대


취임 7개월 차에 접어든 강 차관 앞에는 아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신한울 3·4호기 본공사를 위한 마지막 관문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가 남았다. 내년초 발표를 목표로 수립 중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현실적인 신규 원전 건설 계획도 담아야 한다. 첨단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국가 전력망을 차질 없이 구축하면서도 2년여 누적 영업적자 45조원에 이르는 한전의 정상화를 견인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15년 만의 원전 수출 낭보도 기대된다. 한수원이 미국·프랑스 기업과 경합 중인 체코 신규 원전 1기 건설사업 수주 결과가 내년 중 나온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추진 등으로 폴란드,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네덜란드 등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추진하며 K-원전의 수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달 1~2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현지에서 주요국을 상대로 원전 세일즈를 펼친 강 차관은 “앞으로도 주요국 고위급 면담을 비롯한 적극적인 원전 세일즈 활동과 국내 원전 수출 생태계 조성으로 실질적 성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부내 최고 에너지 전문가로서 세세한 정책까지 훤히 읽고 있고 대통령실 초대 산업비서관으로서 이번 정부 국정철학과 기조도 잘 이해하고 있다”며 “머잖아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성 차관은…

△1965년 경북 문경 출생 △수도전기공고 △울산대 전기공학 △연세대 경제학 석사 △서울대 경제학 박사 △기술고시(29회)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관 △소재부품장비산업정책관 △무역투자실장 △산업정책실장 △에너지산업실장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 △제2차관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지난 6월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73회 전원개발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이날 위원회에서 윤석열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신한울 원전 3·4호기 부지공사에 대한 승인이 이뤄졌다. (사진=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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