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부임해서 처음으로 히로시마민단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간단한 인사 뒤에 동포들이 제일 먼저 꺼낸 이야기는 ‘우리 위령비를 대통령이 방문하면 원이 없겠다. 이 염원을 본국에 꼭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발언에 내심 당황했지만, 그 뒤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제에 참가하고 수시로 위령비와 피폭자 이야기를 접하면서 왜 동포들이 대통령의 위령비 방문에 그토록 강한 소망을 담고 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1970년에 평화기념공원 밖에 세워졌다가 1999년에 공원 내로 이설된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는 공원 내에 있는 여러 기념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특정 민족의 희생자를 추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육중한 검은 석재가 비의 본체를 이루고 이를 떠받친 거북이 대좌는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왜 동서남북 중 어느 한 쪽이 아닌 북서쪽을 향하는지 의아해하는 방문객들도 ‘거북이는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설명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이제 한국인 피폭자들도 한국에 있든 일본에 있든 원폭수첩을 발급받아 의료비 지급 등 지원을 받았다. 독자들이 한국인 피폭자 문제를 듣지 않았다면 그것은 한일간 국경을 넘어선 시민들의 연계와 활동, 정부의 관심이 피폭자들의 처우 개선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위령비는 고국과 동포사회를 연결하는 기념물이기도 하며, 이 자리에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참배함으로써 비로소 지난 세월의 상처가 아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히로시마 동포사회에는 가득 차 있다. 더구나 사상 최초로 일본 총리가 대통령과 함께 방문한다는 것에 동포사회는 한일 양국의 새 미래가 도래하리라는 희망을 보고 있다. 한일관계에 관한 여러 담론이 연일 지면을 채우고 있지만, 78년에 걸친 우리 동포들의 기다림과 회한을 곱씹으면서 그것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다음 주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