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최근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몸집을 불린 스타트업들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의 주요 참가자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대기업이나 PEF운용사가 사들이는 ‘객체’의 입장이었던 스타트업이 든든한 투자자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제는 다른 기업을 사들이는 ‘주체’로 입지가 바뀌었다.
| 스타트업이 타 기업을 인수한 사례(표=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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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타트업에서 성장해 대기업 자회사나 초기 기업을 사들이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당장 대상그룹이 운영하는 유기농 식품 유통업체 ‘초록마을’의 지분 100%를 약 1000억원에 확보한 것은 2016년 설립된 6년차 스타트업 정육각이었다.
초록마을 지분 인수전은 스타트업이 기업 인수의 주체로 떠오른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정육각과 경쟁하던 곳들도 바로고, 컬리 등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외형을 불려온 업체들인 탓이다. 인수전에 참전한 대기업 계열은 이마트에브리데이 한 곳에 그쳐 달라진 M&A 시장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
스타트업 기반의 회사가 M&A로 몸집을 불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국내 1위 밀키트 업체 프레시지는 지난해 11월부터 연달아 기업들을 사들이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지난 1월 프레시지는 시장 2위 업체인 ‘테이스티나인’의 경영권을 확보했고, 지난해 11월 특수 간편식 기업 닥터키친을, 이어 닭가슴살 쇼핑몰 허닭과 물류기업 라인 물류시스템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미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한 무신사는 여성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인 스타일쉐어와 29CM를 인수하며 여성층 공략에 나섰다. 컬리는 헤이조이스를 인수해 이나리 대표를 영입, 비교적 부족했던 국내 네트워크를 보강하는 한편 헤이조이스가 보유한 여성 회원의 네트워크를 흡수했다.
실제로 스타트업 투자자들도 스타트업 간 M&A를 독려하는 분위기다.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바로고는 초록마을 인수를 위해 PEF운용사 케이스톤파트너스로부터 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스톤으로서는 바로고의 초록마을 인수가 가져올 시너지와 이에 따른 기업 가치 상승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프레시지에 투자한 앵커에쿼티파트너스도 공격적인 M&A를 주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 간 합종연횡이 우리나라 스타트업 및 자본 시장이 성숙해지고 있단 방증이라고 보고 있다. 스타트업이 자체 역량으로 기업공개(IPO)에 나서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돕는데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비슷한 업종, 또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 간 M&A를 통해 상호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설명이다.
한 IB업계 전문가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별개 다른 기업을 각자 투자해 성장하는 것보단 한 투자업체를 구심점으로 인수합병해 인적·시장 네트워크를 보완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편이 엑시트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라면서 “특히, 현재 시장 내 유동성이 풍부해 스타트업이 M&A에 뛰어들 때 투자자들이 ‘쩐주’로서 힘을 보탤 여력이 충분하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