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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인들의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모습이다. 아프간 대피 작전이 실패한 건 자위대의 무력 사용을 금지한 현행법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으면서다. 자위대에 무력 사용이 허용됐다면 일본 정부의 자국민 탈출 작전은 성공했을까.
“비상시에는 스스로 지키는 게 낫겠다” 자조
일본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 부재에 일본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미군이 아프간 관문인 카불 공항을 제어하고 있으니 자위대만 파견하면 대피 희망자들을 수월하게 이송할 수 있을 것이라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3일 기시 노부오 방위상이 “카불 공항에서의 안전은 확보되고 있다”며 자신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일본 정부가 대피를 원하는 이들에게 카불 공항까지 자력(自力)으로 올 것을 요구했고, 결국 이들이 공항까지 오는 길에 검문소를 세우며 경계를 강화한 탈레반에 발목이 잡히며 탈출이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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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외무성 직원이나 대사가 될 사람은 자국민 보호에 관한 연수를 철저히 받아야 한다”며 “보호해야 할 자국민을 내버려둔 채 맨 먼저 도망을 가나? 부끄러운 줄 알라”는 비난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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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분노는 기묘한 논리로 귀결되고 있다. 자위대의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공감을 받으면서다.
일본은 수차례 헌법 개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확대한 바 있다. 지난 2015년 아베 신조 정부는 자위대법을 개정하면서 유사시 자위대가 일본인을 수송할 뿐 아니라 무기를 사용해 경호하고 구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번 아프간 대피 작전은 개정된 법을 적용하는 첫 사례였다.
다만 아직까지 자위대의 무기 사용은 일본인 보호에 한정하며, 긴급 피난 과정에서는 불허하는 등 법적 제한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자위대의 손발을 묶어둔 현 평화헌법이 아프간 대피 작전 실패 원인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작전에서는 전략이 무력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위대가 단 한 명의 일본인을 구조하는 데 그친 건 무력을 사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현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신속한 의사소통에 실패했으며, 무엇보다 자국민을 보호할 의지와 능력이 복합적으로 모자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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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급하게 아프간을 떠나며 현지인 직원들에게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 한 외교관이 다시 복귀한 모습은 대피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건 전략과 의지라는 점을 보여줬다.
“이득 없는 곳에는 머무르지 않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정당화하며 내세운 이 논리는 앞으로의 대외정책 방향을 암시한다. 50년 넘게 미국에 안보를 의존해 온 일본에서도 지나친 의존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방위 능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하지만 전략 없는 무력 허용은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