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신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 십수개의 일정을 소화하는 대통령이 부산까지 이동한 이유는 정부가 해운사의 신규 선박 확보와 해운산업 친환경 전환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날 1만6000TEU급(1TEU=20피트 컨테이너 한 개) 원양 컨테이너선 한울호 출항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오는 2030년까지 150만TEU 이상의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을 확보해 해운 매출을 70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세계 해운산업 리더국가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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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직접 지역항을 찾아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의 친환경·스마트 해운물류 시스템 도입을 통한 미래성장 동력 마련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친환경 선박 산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지목하면서 기관과 민간 차원에서 투자를 촉진하려는 의도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데일리와 KG제로인 주최로 지난 8일 열린 글로벌 대체투자 컨퍼런스(GAIC) 웨비나에서는 ‘친환경 기반 선박금융 투자’를 주제로 영국 런던과 서울을 화상으로 연결해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친환경 선박 산업과 선박금융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해운·인프라금융 회사인 ‘푸루스 마린’(Purus Marine)의 줄리안 프록터(Julian Proctor) 최고경영자(CEO)와 이재민 한국금융연구소 대표(전 한국해양대 교수·한국수출입은행 부행장), 서기원 한국선박금융 대표이사, 성기종 한국조선해양 상무 등 국내외 전문가들이 원격 화상토론을 진행했다.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들이 ESG(환경·책임·투명경영) 중심 경영을 선언하면서 ESG 경영은 더는 선택이 아닌 전 산업계의 트렌드로 확산한다는 점도 블루 이코노미 도입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과도기적 친환경 연료인 LNG 추진 선박의 시대가 저물고 수소와 암모니아를 연료로 사용하는 차세대 친환경 선박이 대세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들 차세대 선박은 황산화물이나 질소산화물·탄소 등의 대기 오염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선박으로 기존 선박 연료(벙커C유)와 비교해 에너지 효율을 40% 이상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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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친환경 흐름을 타기 시작한 해운 산업에 조속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줄리안 프록터 CEO는 “(ESG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글로벌 브랜드들의 저탄소 기반의 공급망 솔루션을 강구하는 상황이지만 친환경 선박 환경을 만들 자본은 아직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본격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관·민간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프록터 CEO는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던 국내 해운 산업은 2016년 한진해운 이슈로 적잖은 타격을 입었지만 최근 정부 투자 등에 힘입어 경쟁력을 되찾고 있다”며 “국내 해운 산업의 성패는 정부를 비롯한 기관·민간 투자자들의 재정 지원 여부에 따라 갈릴 것이다”고 말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해운 산업 자금의 약 80%가 정부로부터 나오는 등 민간 부문의 낮은 참여도를 끌어올릴 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은행 등 민간 자본에서 투자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 특성상 모험 자본 성격이 적다 보니 공격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언급도 나왔다.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정책이나 의견 일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기원 대표는 “일정 수익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투자 기조를 지향하는 기관투자자들의 특성상 당장의 낮은 수익률을 감당하고서라도 해운 선박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민 대표도 “최근 투자자 사이에서 ESG와 기후변화 이슈의 중요성 잘 알고 있다”면서도 “(기관투자자들은) 기업 프로젝트 중에서도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걸 더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프록터 CEO는 “가시적인 수익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엔 동의한다”면서도 “친환경 투자에 눈을 서서히 떠가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더라도 큰 투자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