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중심지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국가 부채시계`(National Debt Clock)를 만들어 세운 시모어 더스트(Seymour Durst)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종종 이같은 말을 했다. 나라빚이 눈덩이처럼 쌓여갔던 1980년대초, 그는 연말이면 상하원 의원들에게 카드를 보내곤 했는데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미국 국가 부채중에 당신 몫은 3만5000달러예요`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부채시계를 세운 이유는 늘어나는 나라빚과 이로 인해 국민들이 떠안게 되는 부담의 실상을 정확히 알려 경각심을 높이자는 의도였다. 이같은 구상은 그가 76세때인 1989년에서야 빛을 보게 되는데 당시 타임스광장 인근에 세워진 부채시계는 2조7000억달러로 출발했다. 2000년 들어 국가부채가 줄어들면서 잠시 가동을 멈췄던 시계는 2002년 7월 다시 작동했는데, 당시 부채규모는6조1000억달러. 나라빚은 이후 갈수록 늘어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9월30일 10조달러를 돌파했다.
부채시계 웹사이트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부채는 매일 39억달러씩 늘어나는데 14일 현재 14조9895억달러다. 미국 인구가 3억1165만명이니 1인당 부채규모는 4만8094달러, 원화로는 5400만원 정도 된다.
한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올해 43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5.1%에 달한다. 미국이나 유로존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공기업 채무 등 공공부문 부채를 포함하면 나라빚은 GDP의 100%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통으로 불리는 한 여당 의원은 최근 국가부채 규모를 1848조원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경제성장률과 비교할 때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도 우려를 더한다.
지난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통계청은 공동으로 가계부채에 대한 보도자료를 냈다. 차제에 한가지 제안하고 싶다. 중앙은행과 감독당국, 정부가 뜻을 모아 서울에 부채시계 하나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대책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후에 병을 잘 고치는 것 보다 사전에 병이 안나도록 예방하는 것이 명의다. 부채의 심각성을 국민들이 정확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인식하는 것은 선제적 통화·감독정책의 수립과 집행에도 도움이 된다. 선택적이냐, 보편적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전개되는 복지논쟁도 나라와 가계빚의 실상을 똑바로 알면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실상이 정확히 전달되는 게 두렵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우리의 빚 문제와 사회 분위기로 봤을 때 부채시계 하나 만드는 것은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아 보인다. 참고로 더스트가 1989년 부채시계를 세울 때 들인 돈은 10만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