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은 홍콩 영화계가 중국의 검열 때문에 힘들다고 발언했다. 한때 아시아 영화계를 대표했던 홍콩영화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그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면서 오랜 침체를 겪고 있다. 과거 홍콩에 좋은 기억이 있던 이들도 “지금의 홍콩은 예전 같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30여 년간 홍콩을 연구해온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은 이제 사라졌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홍콩과 중국의 정체성이 빚어온 갈등의 결과다. 홍콩은 아편전쟁 이전까지는 인구 8000명 정도의 어촌에 불과했다. 그러나 1842년부터 1997년까지 155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 시절을 겪으면서 남다른 정체성을 갖게 됐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특성이 공존하게 된 것이다. 홍콩인들의 사고방식 역시 혼종적이었다. 홍콩 특유의 ‘애매함’이 곧 홍콩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홍콩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됐다. 동시에 그동안 홍콩인의 정체성으로 보여준 ‘애매함’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다. 문제는 중국도 중국만의 방식으로 홍콩의 ‘애매함’을 지우려고 한 것이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의식으로 무장된 중국인, 그리고 스스로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홍콩인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2020년 6월 홍콩보안법 발표는 홍콩인의 정체성 문제에서 큰 기점이 됐다. 이제 홍콩에서 정치적 시위는 사라졌고, SNS에서조차 홍콩인들은 조용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홍콩은 이제 없다. 그렇다면 홍콩은 망한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편전쟁 이후 새로운 홍콩의 역사가 시작한 것처럼 “이전에 없던 새로운 홍콩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