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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규모 세계 청소년 야영대회로 기록될 뻔했던 새만금 잼버리는 부실한 준비와 태풍 악재가 겹치면서 100년 잼버리 역사상 가장 불운한 대회가 됐다. 특히 수년간의 준비기간, 수천억의 막대한 예산도 치밀한 준비와 실행 가능한 메뉴얼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국가적인 행사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로 말로만 철저한 준비를 주문했다. 대회를 유치한 전북은 6년간 대회 준비보다 새만금 개발에만 몰두했다. 이 같은 정부의 무관심, 지자체의 방관 속에 한국스카우트연맹 인사들로 채워진 조직위원회는 주먹구구식, 일방통행식 운영으로 대회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윤은주 한림대국제대학원대학 교수는 “새만금 잼버리는 대한민국 국제행사 개최사(史)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됐다”며 “국제행사는 백 번의 성공보다 한 번의 실패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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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타워 부재는 정부 무관심 행정을 빼고는 설명이 안된다. 2018년 제정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은 유치 당시 491억 원이던 예산을 두 배 넘게 늘리는 보증서 용도로만 쓰였을 뿐, 행사 성공 개최에 필요한 충분조건이 전혀 되지 못했다.
지난 2월 합류한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전체 준비 기간의 90% 이상이 허비된 상황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북도 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이대로 가다간 큰 사단이 난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행안부, 문체부가 합류하고 143억원이 긴급 편성된 올 2월 이후 4~5개월간의 골든타임 중에도 상황이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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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과 방충은 무관심을 넘어 직무유기에 가깝다. 코로나19 감염이 완전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150여개 국가에서 4만 명이 넘는 청소년(만 14~17세)이 한곳에 모이는 행사에 범정부 차원의 방역 대책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개영을 1주일 남겨놓은 7월 말은 일일 감염자 수가 4만 명을 넘어서며 재유행 우려가 커지던 때였다.
1000억원이 넘는 사업 예산 중에서 방역 관련 예산은 전체의 2%가 조금 넘는 28억원이 전부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사전에 코로나19 방역 대책만 제대로 세웠어도 현장에서 위생, 방충 문제는 크게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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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 잼버리 유치로 황무지나 다름없던 새만금에 인프라를 확충할 명분을 얻게 된 데에만 주목했다. 잼버리 참가자 이동편의를 위해 필요하다며 7900억원을 들여 새만금 내부 동서남북을 잇는 십자도로를 개통했고, 새만금 국제공항은 예비타당성까지 면제받으면서 정부로부터 8000억원을 받아냈다. 국제공항 없이 잼버리를 여는 건 국제적 망신이라던 주장과 달리 새만금 국제공항은 아직 착공도 못한 상태다. 2조원 가까이 들어가는 새만금·전주 간 고속도로 역시 아직 건설이 진행 중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언석 의원은 “새만금 신항만(3조 2000억원), 인입철도(1조 3000억원), 연결도로(1조 1200억원) 등 그동안 잼버리를 이유로 정부로부터 받아낸 예산만 11조원”이라며 “잼버리와 상관없는 새만금 개발에만 몰두한 결과가 새만금 잼버리 총체적 부실로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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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준비와 운영에 국제행사 개최 경험을 갖춘 총괄 운영사 등 전문가는 애초부터 배제됐다. 여기에 협력사는 전북 기업 우선 배정이라는 지역주의까지 더해지면서 조직위는 더더욱 폐쇄적으로 운영됐다. 5본부 34부 40팀으로 세분화한 조직위는 몸집은 비대해지고 역할과 책임은 모호해지면서 현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회가 절반 가까이 지날 때까지도 조직위는 예멘과 시리아, 수단 등 국가들이 입소하지 않았다는 사실 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한석 한국이벤트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국제행사는 잘해도 본전, 한 번 실수하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큰 ‘독이 든 성배’와 같은 것으로 정부와 지자체, 민간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력체계는 필수”라며 “새만금 잼버리 준비와 운영 상의 문제점을 모두 백서로 남겨 다시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