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1년 10월13일. 대전 대덕구 비래동을 순찰 중이던 경찰관이 피격을 당했다. 괴한의 차에 치인 경찰관은 정신을 잃었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이 소지한 권총이 탈취당했다. 비상이 걸린 경찰은 총기를 찾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당시는 이 사건이 몰고 올 파장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 2001년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에서 권총 강도 살인사건을 피의자 이승만이 지난달 2일 오전 대전 동부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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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두 달여가 흐른 그해 12월21일.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에 은행 강도가 들었다. 지점 지하에서 현금 수송차량이 현금을 옮기던 오전 10시께였다. 현금 차량의 출입 시각과 동선을 파악한 계획적인 범죄였다. 2인조 복면강도는 현장을 급습하고 현금 3억 원을 훔쳐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던 은행 직원이 강도의 공격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총격에 의한 사망이었다. 총기 제조와 유통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한국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였다. 범행에 쓰인 총기는 두 달 전 경찰관이 빼앗긴 그 권총이었다.
세밑에 발생한 강력 사건에 치안 공백 우려가 커졌다. 곧 월드컵을 앞둔 것도 걱정이었다. 총기를 회수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이 커졌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범인을 추적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2002년 8월29일 은행강도와 공범을 포함한 범인 3명을 체포했다. 이제 경찰관에게서 총기를 빼앗아 이들에게 팔아넘긴 범인 2명을 잡으면 수사는 마무리되는 듯했다.
| 21년 만에 붙잡힌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피의자 이정학이 지난달 2일 대전 둔산경찰서를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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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법원에서 범인 3명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증거 불충분이 이유였다. 경찰은 이들의 자백을 기반으로 구속을 시도했는데, 법원 심문 과정에서 경찰 강압으로 허위 자백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날 경찰관을 습격해 권총을 빼앗은 이들도, 나중에 은행을 턴 이들도, 은행직원을 살해한 이들도 동일인이었다. 경찰은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릴없이 현상금을 두 배로 올렸지만 진척이 없었다. 사건은 그렇게 잊혀갔다.
진범이 잡힌 것은 올해 9월이다. 진범은 당시 경찰이 권총 판매상으로 보고 쫓던 2명이었다. 이들은 체포 이후 당시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 은행을 털기 전에 경찰관에게서 권총을 빼앗고, 그러려고 차를 훔친 것을 인정했다. 이후 은행 직원을 살해하고, 3억원을 훔친 것 등등을 자백했다.
그런데 유독 권총의 행방은 진술이 엇갈렸다. 한 명은 범행 이후 권총을 야산에 묻었다가 훗날 다시 찾아서 분해해 여기저기에 버렸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권총을 바다에 버렸다고 했다. 범인은 재판이 시작되자 자신은 총을 쏘지 않았다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서 내용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사라진 권총은 아직 회수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