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선천성 말판증후군, 조기에 발견 치료해야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 등록 2022-02-05 오전 12:03:27

    수정 2022-02-05 오전 12:03:27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건강에 별 문제 없이 지내던 43세 남자 분은 평소 운동을 좋아했고 특히 헬스장에서 역기 들기 등 하중을 크게 줘서 하는 근력 운동을 좋아했다. 평소 혈압은 높지 않았고 약물 복용은 하지 않았다. 어느 때처럼 근력 운동을 하면서 역기를 들었는데 굉장히 심한 흉통을 느꼈다. 그날 밤에는 누워서 잘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심하게 차서 응급실을 내원했고, 도착하자마자 산소 포화도가 감소해 쓰러져 심폐 소생술을 시행후 가까스로 혈압과 맥박이 회복됐다.

이후 확인한 응급 x-ray 에서 흉부의 대동맥의 확장이 의심돼 흉부 CT 를 시행하기로 했다. 때마침 응급실을 지나 급하게 심폐 소생술을 하던 환자를 보고 심장 초음파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를 시행했는데 심한 대동맥의 확장과 대동맥 박리 (심장에서 박출한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대동맥 벽이 찢어지면서 혈액이 혈관 내강에 있지 못하고 벽 사이로 새어 나가는 병) 소견이 보였고 그와 함께 대동맥 판막도 뒤로 빠지면서 심한 대동맥 판막 역류와 좌심실의 확장과 심기능 저하 (심부전) 소견이 있었다. 이후 확인한 CT 상에서도 심장으로 연결되는 대동맥의 기시부 부터 늘어나고 찢어진 대동맥 박리가 확인되었다.

환자는 급히 수술실로 옮겨져 응급 대동맥 치환술과 대동맥 판막 치환술을 받았고 3-4 일간 중환자실 치료 후 일반 병실로 옮겨 심부전 치료를 지속하면서 다행히 무사히 퇴원하여 외래에서 경과 관찰 중이며 근력 운동은 하되 아주 급격히 힘을 주는 운동이나 과한 역기 들기 등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환자는 키가 190cm 에 몸무게가 85kg 로 매우 근육이 많은 남성이었고 겉 모습도 평범했다. 그러나 오목 가슴이 있었고, 눈이 좋지 않아 안과를 자주 다녔다고 한다. 근육이 꽤 좋았으나 다른 사람보다 조금 유연한 듯 생각이 되었고, 친척들 중에 키가 크고 판막 질환이 있던 분이나 심장 질환이 있던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혈압이 높지 않았음에도 대동맥궁의 확장 소견과 이로 인한 대동맥판 역류 그리고 대동맥 박리, 근골격계의 이상, 안구 이상등이 말판 증후군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였으며 FBN1 이라는 유전자의 변이를 확인해 말판 증후군을 확진했고 아이들도 모두 검사를 진행했는데 아이들 중 두명에서 같은 유전자 변이가 발견돼 외래에서 정기적으로 초음파를 시행하고 있다.

환자는 키가 큰 것만 제외하면 얼굴 모습이나 팔 다리의 길이가 일반적인 말판 증후군 환자들과는 조금 달랐는데 내 환자들 중에 키가 작은 체형의 여성중에서도 말판 증후군으로 인한 대동맥 박리를 발견한 경우도 있어 (환자의 가족들이 모두 대동맥 박리 소견이 있었다) 겉모습만으로는 확진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겉모습이 조금 다르고 가족력이 있다면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말판 증후군은 결합조직 (connective tissue)에 이상이 있는 선천성 질환으로, 손가락이 길어 “거미 손가락증”으로 불린다. 1만명중 1명 정도 발생할 수 있으나, 말판 증후군 환자의 아이는 50%에서 질병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도 말판 증후군 환자로 추청한다. 결합조직이란 세포 사이의 물질을 구성하여 여러 조직과 기관 사이에 세포들을 연결하는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유전자의 이상 소견으로 결합 조직에 이상이 나타나 근골격계나 심장 순환기계, 특히 대동맥에 이상 소견을 일으키게 된다.

위에 내 환자 처럼 모든 증상이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말판 증후군 환자들은 비정상적으로 키가 크고 팔, 다리가 가늘과 길다. 갈비뼈가 과성장해 흉곽함몰, 돌출, 비대칭이 나타날수 있고, 관절이 약하고 척추 측만증이나 후만증이 동반될 수 있다.

심장 순환기계 이상은 말판 증후군 환자의 질병과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는데 위의 환자처럼 좌심실에서 전신으로 혈액을 보내는 대동맥의 기시부가 비정상적으로 확장 되면서 대동맥판 역류가 나타나기도 하고 대동맥 혈관벽이 선천적으로 약해 대동맥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 또는 대동맥 파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대동맥 박리는 신체적, 감정적 스트레스와 격한 운동 혹은 임신등에 의해 악화될 수 있으며 대동맥 박리와 파열이 발생한 경우 대량의 혈액이 혈관 벽 틈 혹은 혈관 밖으로 새어 나오기 때문에 사망률이 높고 응급 수술을 요한다. 이외에도 눈의 수정체 탈구가 생길 수 있으며 녹내장이나 백내장이 생길 수도 있다.

아직까지 말판 증후군의 근복적인 치료방법이 개발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주의깊게 임상 양상을 관찰하고 약물 치료를 받으면 예후를 호전 시킬 수 있다. 한 례로 말판 증후군인 자매를 진단하고 외래에서 경과 관찰 중이었는데 한 환자는 외래를 잘 다니고 혈압 조절을 하면서 대동맥이 커지는지 심부전이 발생하지 않는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필요시 수술을 하기로 했고 과격한 운동은 삼가고 스트레스를 줄이려 노력하여 50대까지 큰 문제 없이 다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자매였던 동생은 외래를 다니지 않고 평소에 스트레스나 혈압 관리도 하지 않아 결국 대동맥이 찢어지면서 응급실을 방문하여 응급 수술을 통해 겨우 살아난 경우도 있다.

대동맥 확장의 경우 수술 날짜를 잡고 순차적으로 하는 수술에 비해 박리가 되면 응급 수술을 해야 하고 그 경우 사망률은 당연히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심장 초음파를 통해 심장과 대동맥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검사하고 혈압과 대동맥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여 예후를 호전 시킬 수 있으며 대동맥이 늘어나는 속도를 보면서 수술을 계획하면 큰 문제 없이 살아가게 된다. 일상 생활 중에서는 심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경쟁하는 운동이나 급격히 힘을 주는 운동은 피하지만 정기적인 운동은 중요하다. 특히 유전자 변형이 있을 경우 자녀들에게 50% 정도 유전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전 상담이 매우 필요하다. 특히나 자녀에게 유전되었다는 죄책감에 환자가 매우 불안해 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그런 마음이 오히려 자녀와 환자에게 더 안 좋을 수 있다. 오히려 일찍 병을 발견했고 정기적으로 외래를 다닐 때 문제 없이 다닐 수 있으며 더 조심하게 되고 하루 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니 좋게 생각하시도록 잘 이야기 드린다. 특히나 자녀가 여자인 경우 임신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데 임신은 가능하지만 대동맥 박리 위험이 있으므로 2-3 개월마다 심장 초음파를 시행하면서 면밀히 관찰해야만 한다.

8년이 지나 환자는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좌심실 기능도 모두 회복돼 일상 생활과 근로에 전혀 장애가 없다. 환자의 딸도 일찍 발견하여 외래에서 정기적으로 관찰하면서 임신도 하고 출산도 문제 없이 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환자분은 고마워 하면서 걱정이 있을있을 때 함께 고민해 주고 죄책감을 덜어 주어서 감사하다고 한다. 아무런 병 없이 평범히 사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조기에 병을 발견하고 관찰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이 모든 병을 이기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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