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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모집 취소 이유는…‘금소법’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운용사는 신규 공모펀드를 출시하고 고객 모집에 나섰다가 하루 만에 이를 중단했다. 상품 개발 단계서부터 해당 펀드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던 주요 판매사가 모집 첫날 갑자기 “팔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직접 펀드를 안내해야 하는 WM(자산관리) 등 현업에서 해당 펀드가 폐쇄형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금소법과 내달 10일 시행 예정인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규제 강화의 핵심은 판매사의 책임 강조다. 금소법에 따르면 금융사의 잘못 시 최대 5년까지 불이익 없이 해지가 가능하고, 설명의무 위반 시 입증 책임을 금융회사가 하도록 했다. 처벌 조항 또한 강력해 업계는 이를 악용하는 블랙컨슈머를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혼선에 따른 피해는 운용사 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자도 떠안아야 했다. 운용사가 끝내 모집 취소를 결정하고 전 판매사에 통보하기까지 하루 이상 시간이 소요됐다. 실제 펀드가 설정되진 않았으나, 그 사이 일부 판매사는 고객의 자금을 받았고 갑작스러운 모집 취소에 자금을 다시 돌려줘야 했다. 펀드 가입까지 수많은 서류를 작성하고, 대면인 경우 현장에서 녹취가 이뤄지는 등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헛수고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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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사에 있어 판매사는 통상 ‘갑’으로 통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월 말 현재 공모펀드의 판매 기관별 판매잔고를 살펴보면 증권이 59.08%, 은행이 35.97%, 보험이 1.70%, 직판 등의 기타가 3.24% 수준이다. 지난해 이후 직접 판매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판매사 비중이 압도적이다. 때문에 운용사로서는 판매사가 특정 펀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른바 ‘추천 상품으로 걸어주는 일’에 큰 의미를 둘 수밖에 없다.
업계는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가뜩이나 정체된 공모 펀드가 규제 강화로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16년 말 94조4204억원이었던 개인 투자자의 공모 펀드 판매 잔고는 지난해 말 82조9672억원으로 5년새 10조원 넘게 빠져나갔다. 내부통제 기능 강화, 적합성 원칙 등 6대 행위 규준 준수를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쏟아야 하는 판매사는 펀드와 같은 금융상품 보다는 저원가성 예금이나 대출 금리 인상 등의 수익성 중심 전략을 취할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각종 규제들이 지닌 소비자의 권익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 범위가 다름에도 지금 분위기에선 안전한 상품만 권하게 된다”면서 “결과적으로 판매사 입맛에 맞춰 금융 상품이 양산돼 금융 소비자의 선택지가 제한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돼, 직접 판매 등 운용사 차원의 자구책 마련도 필요하지만 제도 보완도 이뤄져야 할 부문”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