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1일(한국시간) 미국에서 선거유세 연설 중, 트럼프는 “한국과 무역 문제가 많다”며 뜬금없이 이 영화를 저격했다.
기생충의 미국 배급사가 받아친 말처럼 트럼프의 불만은 ‘이해’는 간다. 자국 영화 대신 한국 영화가 수상한 것 자체도 불만이겠지만 빈부와 계층격차를 주제로 한 기생충의 내용 역시 반갑지 않으리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기생충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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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국제 영화상을 휩쓸면서 미국 매체는 영화의 주제의식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즈는 기생충에 세계가 반응하는 것은 ‘미국식 자본주의 상식에 금이 갔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지만 가난한 개인은 발버둥쳐도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영화와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미국 관객에게 강하게 울려 퍼졌다”며 “기생충은 한국의 불평등을 악몽처럼 그리지만, 미국의 현실은 훨씬 더 나쁘다”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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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더 하다. 최상위 1%가 전체 부의 38.6% 차지하고, 하위 50%는 단 1%도 차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한국의 하위 50%는 약 2%의 자산이라도 갖지만, 미국의 하위층의 자산은 아예 마이너스 상태라고 꼬집었다. 또 한국에서는 상위 1%가 전체 국민소득의 12%를 버는 한편, 미국의 상위 1%는 20% 이상을 벌어들인다고 분석했다.
다른 빈부격차 지표인 지니 인덱스(Gini Index)에서도 미국은 한국보다 빈부격차가 더 심하고, 매년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니 인덱스는 숫자가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한 것인데, 미국의 지수는 지난 2014년 0.47에서 2018년 0.485로 증가했다. 한국은 2015년 기준으로 0.341로 캐나다(0.321)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은 한국 못지않게 불평등 문제에 익숙하고 또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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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관람객들이 쓴 영화평에는 ‘뭔가 모를 불쾌한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수석이 내 가슴에 얹히는 것 같다’, ‘가난을 아는 사람에게는 너무 잔인한 영화’ 등의 내용을 쉽게 볼 수 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은 지난 11일 YTN 라디오에서 “소득이 높은 나라 중 지금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가 미국이고, 안타깝게도 미국을 열심히 쫓아가는 게 대한민국”이라며 “불평등 문제는 세계적으로 심각합니다만, 이 두 나라에서 이 영화의 반향이 크다는 게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생충 내용과 관련해 “계급적인 사회에서 결국 더불어 사는 공동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문제 제기를 아주 치열하게 하는 영화”라며 “그래서 불편했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또한 영화의 목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대안을 찾고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저는 경제학자로서 그런 느낌도 들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5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기자회견에서 ‘미국 관객이 왜 이렇게 이 영화에 환호하는 것 같냐’는 질문을 받고 “자본주의에 관한 영화인데,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인 미국에서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또 “이 거대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하루하루 살면서 계급 이야기를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할 거 같다”고 한다. ‘불편해도 봐야 하는 현실’이라는 말로 들린다.
이 기사는 다음 주 ‘[왜] 영국 예능이 너무 잔인하다고 비판받은 이유’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