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목민관의 자격

  • 등록 2014-06-03 오전 4:00:00

    수정 2014-06-03 오전 4:00:00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역사에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눠 기록될 듯하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에 불어닥친 개혁 바람은 거세다. 61년 역사의 해양경찰이 해체되고 이명박 정부 때부터 ‘안전’과 ‘행정’을 총괄하며 실세 부서로 부상했던 안전행정부가 공중 분해 수준의 조직 개편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또 장관급인 국가안전처와 차관급인 인사혁신처가 신설되고 교육부총리가 부활돼 사회·문화 업무까지 총괄하게 됐다. 고위공무원으로 가는 등용문이던 행정고시는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악명 높은 퇴직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 관행도 이번엔 대수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4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도 당초 열세였던 야권은 무능한 정부에 분노한 민심을 등에 업고 각지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다.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지자 각 지역 지자체장 후보들 또한 앞다퉈 안전 관련 공약을 쏟아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급조한 탓인지 ‘CCTV를 늘리겠다’는 수준에 불과하거나 재원 조달 계획조차 없는 현실성 없는 공약들이 대부분이다.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는 특이한 보직이다. 상대편 공격수가 하프라인을 넘어 골대를 위협하기 전까진 경기장 내 구경꾼 일 뿐이다. 우리 편 공격수들과 수비수들의 경기력이 상대편을 압도한다면 공에 손 한번 대지 못하고 경기를 마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아차 실수로 골을 허용하는 날엔 역적이 되기 십상이다. 선방으로 위기를 넘겨도 그때 뿐이다. 스트라이커처럼 환호성을 받으며 세리머니를 펼칠 일은 없다.

행정에서 안전분야는 골키퍼다. 다리를 놓고, 건물을 짓는 것처럼 눈에 드러나는 성과를 내기 힘들다.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 쉽다. 임기 내에 성과를 내고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 모아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지자체장들 입장에선 달갑잖은 투자다.

하지만 예상 못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게 안전 관리다. 골키퍼가 할 일 없어 보인다고 골키퍼를 빼고 공격수를 넣는다면 필패(必敗)다.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고 안전분야에 대한 투자와 감독을 소홀히 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참사일 뿐이다.

‘광역시도 차원의 안전처를 신설하고, 관련 예산을 매년 몇 %씩 늘려 안전사고를 매년 몇 %씩 줄여나가겠다’는 식의 슬로건성 공약은 모두 공염불이다. 지자체장이 평소에 안전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상시적으로 가동되는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시스템 운영은 역량을 갖춘 전문가에게 맡기고 지자체장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주민들에게 고통과 인내를 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은 지자체의 책임과 역량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생활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 또한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기엔 충분하다. 주민의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는 지자체장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있는 지 의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마을을 다스리는 수령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가 ‘비자(備資)’라고 했다. ‘미리 재물을 비축해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은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다 구차해질 뿐’이라며 ‘대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내일은 목민관을 뽑는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다. ‘비자금’ 조성에 능한 탐관이 아닌, ‘비자’에 노력하는 목민관을 뽑아야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해진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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