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참 살기 편하다. 대중교통이 우리처럼 잘 돼 있거나 아파트 생활이 우리처럼 보편화한 나라가 별로 없다. 그러나 편리성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게 바로 주민번호 제도라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동네 병원에 가도 건강보험카드를 지참할 필요 없이 주민번호 하나면 다 되는 식으로 처리되니 말이다.
우리가 사회생활 하는데 있어 주민번호가 편의성을 제공해주는 만큼 그에 비례해서 우리의 개인 신상은 불법정보 유통자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것이 문제다. 생활 편리성과 해킹 용이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가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인으로 태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군번 같은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런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10곳 이내이나 대부분은 인권탄압국으로 분류되고 국제무대에서 자신 있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라는 놀랍게도 단 둘이다. 한국과 중국뿐이다.
주민번호를 매개체로 해서 정부와 범죄자 간에 공모가 이루어졌다고 표현한다면 다소 지나친 면이 있겠지만 실상은 거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아이핀 같은 대체 수단을 강구할 것이 아니다. 아이핀도 결국 주민번호를 기반으로 해 아이핀 관리 기관이 해킹 당하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뿐이다. 아예 이 문제를 원점에서 접근해 해결해야 한다.
둘째, 주민번호가 문제의 원인일 때에는 민원에 의해 전화번호나 카드번호처럼 간단히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주민번호가 변경되더라도 정부는 국민에 대한 투표권관리와 범죄수사권 관리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도록 IT를 정교하게 활용해야 한다.
주민번호가 범죄자들에게 가장 돈이 되는 먹잇감으로 자리매김 하고있는 상황에서는 선진국과 같이 폐기로 과감하게 나가든지 아니면 우리 고유의 번호 개선책을 강구하든지 양단 간에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이 문제로 여야 정국이 혼탁해지고 정보유출사태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해외 토픽감이 될 뿐이다. IT 강국답게 주민번호 부작용 문제를 정공법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