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물 세 살때 이국 땅 네덜란드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외국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한국으로 귀국해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 것인가.
대학교 3학년 때 배낭여행을 갔던 네덜란드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난 안 씨는 부모의 극심한 결혼 반대에 부딪혔다. 여느 또래 여성들처럼 자신과 비슷한 환경의 남성을 만나 일반적인 가정을 꾸리기 원했던 부모의 반대는 당연했다. 직업도 뚜렷하지 않은, 그것도 외국인 남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고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현실보단 ‘사랑’ 선택…짠순이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하지만 안 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끝내 네덜란드 현지에서 신혼집을 차렸다. 신접살림을 차리는 비용은 단돈 15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웨딩드레스도 직접 만들어 입었고, 모든 가구는 중고로 구입했다.
결혼식도 생략한 채 옆집 친구에게 부탁한 사진 한 장만 남겼다. 남편의 수입이 일정치 않았기에 잘 먹지도 못했던 신혼 초 첫 아이를 임신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돈조차 없었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며 “둘째를 낳을 때도 산부인과 대신 조산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젊은 나이였기에 가능했겠지만, 두 아이를 낳으면서 단 한번도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안 씨는 “정말 산부인과에도 갈 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힘줘 말했다.
“만약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한국으로 귀국해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과 만나 결혼했다면 지금처럼 짠순이로 살진 않았을 거에요. 다른 친구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살았겠죠.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끼고 절약하며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네덜란드에서 3년 간 이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반듯한 직업이 없는 남편 때문에 어렵게 생활했지만,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만들어 온 삶이 더욱 소중하다고 힘줘 말했다.
적금은 무조건 10만원씩, “통장을 쪼개라”
서울 사당역 인근 커피숍에서 안 씨를 만났다. 그는 최근 통장 40개 짠순이 재테크로 강남 주상복합아파트를 산 주부 고수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안 씨는 “한번 방송에 나간 이후 여기저기서 방송 섭외가 들어오면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저축으로 목돈을 만드는 첫 성취감이 중요하다”며 “이를 한 번 맛 본 사람만이 지속적으로 저축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은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드는 경험이 짠순이 재테크의 출발점이란 설명이다. 이렇게 10만원 씩 쪼개 저축해 10년 간 2억원 가까운 종잣돈을 모았다. 이 자금으로 강남의 3억 7000만원짜리 주상복합 아파트까지 살 수 있었다.
그의 절약은 몸에 밴 습관이다. 그의 한 달 용돈은 단돈 5만원이다. 옷은 친구에게 얻어 입고, 남들이 다 쓰는 스마트폰도 쓰지 않는다. 자신을 꾸미는 데 쓰는 돈은 아예 없다. 버스와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고, 택시는 일체 타지 않는다.
남편의 용돈은 그보다 많은 25만원이다. 한 달 식비가 40만원, 둘째 아이 사교육비가 17만원이다. 남편의 차량 유지비는 15만원 선이다. 4인 가족이 쓰는 한 달 생활비가 110만원 정도다. 시간 강사인 남편의 고정 수입은 220만원 남짓이다. 빠듯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남편은 ‘투잡’도 마다하지 않는다. 추가적인 목돈이 생길 때면 무조건 예금으로 묶어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습관이 체질화되다보니, 한 달 용돈 5만원으로 생활을 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크게 불편한 것은 없어요. 남들이 볼 땐 제가 짠순이 같겠지만 상황에 맞추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포기할 땐 포기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죠.”
그는 ‘재테크의 기술’보다는 ‘왜 아껴야 되는가’라는 목적 의식이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안 씨는 “다른 여성들도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이 했을 것 같다”며 “재테크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