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베테랑 뱅커..`제일`과 함께 아듀"

마흔살때 일본어 배워 동경지점장으로 부임
SC은행으로 변경 앞두고 은행권 첫 임원 명퇴
  • 등록 2011-11-08 오전 7:00:00

    수정 2011-11-08 오전 7:00:00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내일부터 여러분은 제일은행 동경지점의 간판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일`이 아니라 `스탠다드차타드`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점포였던 제일은행 동경지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지난 2005년 6월. 당시 동경지점 지점장이던 김진관(사진) 전 부행장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국민 네 명중 한 명이 제일은행 계좌를 갖고 있을 만큼 은행의 위상이 높던 시절 입사해 평생을 ’제일은행인’으로 살아왔던 그였다.   
그로부터 6년이 훌쩍 지난 2011년 10월31일. 김진관 전 부행장의 명함에는 `제일`이라는 단어가 지워졌다. 최근 은행권 최초로 실시한 임원급 대상 명예퇴직제도에 따라 32년10개월간의 `뱅커(banker)` 생활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은행 문을 나선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김 전 부행장을 만났다.   “요즘도 아침 여섯시 반이면 저절로 눈이 떠집니다. 늘 그랬듯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앞에서 검색창에 `SC제일은행`을 입력하고 뉴스를 검색하는 일이에요. 그러다 `아차! 이제 안해도 되지`라고 되뇌입니다”   그의 은행생활 33년은 제일은행의 격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90년대 `조(조흥)·상(상업)·제(제일)·한(한일)·서(서울)`는 대표적인 한국의 시중은행들이었다. 특히 제일은행의 주거래고객은 기아, 대우 등 당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었다. 그러던중 외환위기가 터졌고, 제일은행은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며 1999년 뉴브릿지캐피탈을 거쳐 2005년 SCB에 인수됐다. 은행생활의 상당기간을 미디어와 정부기관 등 대외업무를 담당한 그로선 제일은행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느낀 셈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뚝 일어서자`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제일은행 건물 전면을 태극기로 도배한 아이디어도 그에게서 나왔다. 어려울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은 더욱 애착이 가는 법. 은행이 가장 어려운 시기 홍보 책임자로 일했던 그는 당시 동고동락했던 직원 및 언론사 기자들을 `전우`라고 표현했다. 김 전 부행장은 “제일은행이 망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흔이 되던 해에는 일본어를 배웠다. 남들이 현실에 안주할 시기에 배운 일본어는 그를 동경지점장으로 이끌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만난 정부관계자 및 언론인만 수백명이 넘는다. 이처럼 지난 33년간 뼛속까지 제일은행인이었던 김 전 부행장이 제발로 은행을 떠난다는게 남아있는 `제일` 출신들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김 전 부행장은 최근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노사갈등에 대해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간 5명의 외국인 은행장을 보좌하며 SCB와 제일은행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 애썼지만 아직도 이분법적 구도가 남아 있는것에 대한 아쉬움이 큰 듯 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한손에는 스타벅스 커피,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행장에게 `하이(Hi)`라고 인사하는 외국계의 정서가 여전히 낯설다.   올해말 계획돼있는 `SC제일은행`에서 `SC은행`으로의 행명변경에 대해 김 전 부행장은 “제일이 없어지는건 내 성이 바뀌는 것처럼 섭섭하다”고 말한 뒤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받아들여할 변화라면 집착해선 안될 것”이라며 꾹꾹 눌러 강조했다. `조·상·제·한·서` 중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제일은행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은행에 남아 있는 후배들은 과거의 추억에만 잠겨 있어선 안된다는 게 그의 고언이다.    김 전 부행장은 후배들에게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라고 조언했다. 예전만해도 그의 이력처럼 영업점 근무, 홍보 책임자, 동경 지점장, 은행장 보좌 등 다양한 직무 이동이 가능한 `제네럴리스트`를 원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는 거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기관리에 철저하면서 맡고 있는 업무의 1인자가 되어 반드시 조직에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33년간 그에게 늘 따라다녔던 `제일`. 이제는 은행을 떠나 또 다른 `제일`을 위한 인생의 2막을 그는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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