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혈액암은 진행이 빨라서 두 달 안에 항암치료를 하거나 조혈모세포 기증을 받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헌데 이미 앞선 병원에서 진단명을 찾지 못해 한 달을 허비해서 저희한텐 한 달밖에 없었죠. 제대혈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합니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안산 자택에서 만난 임수경(53세) 씨는 “나중에 준우나 준우 형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제대혈 보관을 결정했었는데, 그 순간의 선택이 내가 이제껏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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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임씨의 아들 성준우(당시 6세)군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종플루의 유행에서 비켜 가지 못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신종플루를 떨쳐냈지만 임씨는 얼마 되지 않아 어린 아들의 목 주변에서 작은 몽우리를 발견했다. 약한 미열과 몽우리 외에 아들에게 특별한 증상이 없어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는 그는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조직검사까지 했는데 한 달 동안 원인을 찾지 못해 결국엔 대학병원에 가게 됐다. 그때까지도 우리 부부는 큰 일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마냥 타인의 조혈모세포 기증만을 기다릴 수 없었던 상황에서 과거 보관해뒀던 준우의 제대혈이 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조혈모세포 이식 대기자들의 평균 대기기간은 6.2년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조혈모세포 기증 등 장기 기증자와 이를 필요로 하는 수혜자 사이 수급 불균형이 더 커져 지금은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가 하루 7명꼴로 발생한다.
반면 의학기술 발달로 제대혈로 치료 가능한 질병은 현재 100여가지로 늘어났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외에서 모두 혈액암 뿐 아니라, 자폐증, 뇌성마비, 발달장애 등의 질환에 더욱 많은 비율로 제대혈 속 줄기세포 이식이 이뤄지는 추세다.
임씨는 “소아암병동에서는 ‘코드블루’(환자의 심장이 멈춰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만 뜨면 다들 자지러진다”며 “그때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혈(보관)을 좀 해놓을 걸’이라고 말하는 보호자들이 많았다”고 했다. 어렵사리 수년을 기다려 유전자형이 맞는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찾았는데 면역거부반응으로 사망한 소아암 환자를 목격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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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스물 한 살이 된 성준우씨는 지금까지도 별다른 이식 부작용이나 혈액암 재발없이 건강하게 청춘을 즐기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제대혈 이식수술 후 아들이 “엄마, 나 살려줘서 고마워”라고 얘기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는 임씨는 제대혈 이식으로 치료기간이 줄어들면서 “결과적으로는 보험보다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며 웃어보였다.
“준우는 감염 위험 때문에 다른 소아암 환자랑 같은 병실을 쓰지 못하는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하루 80만원 짜리 병실에서도, 120만원 짜리 병실에서도 있어봤죠. 아프면 몸도 힘들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장난이 아닌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제대혈로 치료기간을 단축했으니 제대혈이 ‘약’이었던 동시에 치료비에 쓸 돈을 지켜주기도 한 셈이에요. 제대혈 보관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이 결코 적지 않다고 느껴지실 거예요. 하지만 제대혈 이식을 경험했던 입장에서 제대혈보관은 충분히 해볼 만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