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위안의 밤'에 발생한 최악의 압사 사고[그해 오늘]

1959년 7월 17일, 부산서 열린 지역 행사서 압사 사고 발생...67명 사망·150명 부상
소나기 쏟아지자 3만 관객 한꺼번에 좁은 언덕길 출구 몰리며 참사
경찰 공포탄 발사로 혼란 더 키워...혼란 틈타 인근 외국인수용소 수용자 탈출
지난해 이태원 참사 이전까지 최악의 인명 피해 낸 압사 사고
  • 등록 2023-07-17 오전 12:03:00

    수정 2023-07-17 오전 12:03: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나라 전체가 찢어지게 가난하던 전쟁 직후의 1959년, 부산에서 최악의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소나기를 피하려 한꺼번에 좁은 출구로 몰려든 인파 탓에 60여 명이 죽고 100여 명이 다친 끔찍한 사고였다.

부산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발생 다음날, 부산공설운동장 정문 앞에서 시민들이 유류품 등을 청소하고 있다.
1959년 7월 17일,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대신동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공설운동장)에서 한 지역 신문사 주최로 ‘제2회 부산 시민 위안의 밤’ 행사가 열렸다.

TV조차 귀하던 시절 유명 연예인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지역 행사는 일상의 고단함에 찌든 시민들에겐 단비같은 일이었다. 이 같은 시대 분위기를 반영해 해당 행사엔 3만 명 이상의 부산 시민들이 운집했다. 당대 인기 만담가 및 가수들이 출연해 시민들에게 무더운 여름 날씨를 잊게 해 줄 만큼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그러나 공연 시작 이후 약 1시간 30분 가량 지난 오후 8시 30분께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갑자기 폭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요란스럽게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불과 몇 시간 뒤의 일기 상황을 알 수 있는 일기 예보 체계는 전무했던 상황이라, 대부분의 관객들은 우산도 비옷도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무대에서 출구까지 약 50미터 거리엔 전등조차 하나 없었다. 수만의 관중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좁은 운동장 출구로 일시에 몰렸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이 군중의 무질서를 통제한답시고 20여 발의 공포탄을 발사하자 뒤따르던 군중들은 영문도 모른 채 더욱 거세게 서로 당기고 밀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혼잡의 와중에 경사진 언덕길에 몇 사람이 넘어지고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들도 그 사람들에 걸려 넘어지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참사가 빚어졌다. 운동장은 순식간에 67명이 죽고 150명이 다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수사 당국은 사고 원인으로 평소 2000~3000명 정도를 수용하던 운동장임에도 당일 행사엔 10배 이상의 인원을 입장시켰다는 점과, 사람 9명이 한꺼번에 나올 수 있을 정도인 폭 약 6미터의 좁은 정문 등을 들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이틀 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회의에 출석한 당시 최인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고의 원인에 대해 “국민 각자의 도덕심 결여에 책임이 있다”는 면피성 발언을 내놨다. 이후 관청과 학교들에는 ‘집단 도덕 양양’이라는 표어가 약 한 달 간 나붙었다고 전해진다.

이와는 별개로 공설운동장에서 아비규환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던 혼란을 틈타 부산의 외국인수용소에 수용 중이던 일본인 어부들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국은 몇 시간 만에 141명 전원을 검거해 재수용했지만 이날 압사 사고가 발생해 수용소에 근무하던 경관 20명이 차출되자 그때를 노린 사건이었다.

부산공설운동장 압사 사고는 지난해 10월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압사 사고로 기록됐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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