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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차 귀하던 시절 유명 연예인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지역 행사는 일상의 고단함에 찌든 시민들에겐 단비같은 일이었다. 이 같은 시대 분위기를 반영해 해당 행사엔 3만 명 이상의 부산 시민들이 운집했다. 당대 인기 만담가 및 가수들이 출연해 시민들에게 무더운 여름 날씨를 잊게 해 줄 만큼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그러나 공연 시작 이후 약 1시간 30분 가량 지난 오후 8시 30분께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갑자기 폭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요란스럽게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불과 몇 시간 뒤의 일기 상황을 알 수 있는 일기 예보 체계는 전무했던 상황이라, 대부분의 관객들은 우산도 비옷도 갖고 있지 않았다.
대혼잡의 와중에 경사진 언덕길에 몇 사람이 넘어지고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들도 그 사람들에 걸려 넘어지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참사가 빚어졌다. 운동장은 순식간에 67명이 죽고 150명이 다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와는 별개로 공설운동장에서 아비규환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던 혼란을 틈타 부산의 외국인수용소에 수용 중이던 일본인 어부들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국은 몇 시간 만에 141명 전원을 검거해 재수용했지만 이날 압사 사고가 발생해 수용소에 근무하던 경관 20명이 차출되자 그때를 노린 사건이었다.
부산공설운동장 압사 사고는 지난해 10월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압사 사고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