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조선의 중인·향리는 어떻게 특권층이 됐나

출생을 넘어서
황경문|584쪽|너머북스
  • 등록 2022-07-20 오전 12:10:00

    수정 2022-07-20 오전 12:1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중인·향리·서얼·무반·서북인 등은 조선시대 양반 바로 다음 위치의 계급을 차지했던 ‘제2신분집단’이다. 호주국립대 교수인 저자가 조선 중기 이후 제2신분집단이 보여준 사회적 지위 상승이 현대 한국 근대사를 지나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제2신분집단의 사상이 한국 특권층 의식 밑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제2신분집단은 수세기 동안 관료적 위계와 사회적 위계 양면에서 종속된 위치에 머물며 주로 혈통에 입각해 힘겹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허준, 황진이, 김홍도, 신윤복, 신재효 등 중요한 인물을 배출했다. 주목할 것은 제2신분집단이 관직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의 변화를 통해 권력 상층부로 서서히 진입했다는 것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양반이 혈통을 통해 특권을 세습한 것과 달리 제2신분집단은 재능·재산 등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의 경로를 밟았다.

저자는 제2신분집단이 부상하면서 사회적 위계 관계가 수정된 것이 한국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제2신분집단이 부상함에 따라 사회적 지위 또한 타고나지 않아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기존의 연구는 한국의 근대성이 자본주의·산업화·도시화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계층화 또한 계급 차이에 따라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저자의 주장은 이러한 연구와는 궤를 달리한다.

제2신분집단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지위 의식’이다. 지위가 있어야 최상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명문대 졸업장을 갖기 위한 열정,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기 위한 인정투쟁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인이 왜 그토록 특권에 따른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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