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따오 하이얼본사 역사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벽에 걸려 있는 문구다. 노자가 지었다는 도덕경 17장에 나온 문장이다. 평소 노자와 장자 서적을 틈나는 대로 섭렵한다는 장뤼민(사진) 하이얼 회장은 노·장 철학을 실제 경영에 다양하게 접목시켜 반영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하이얼에서는 ‘태상 부지유지’ 경영철학을 가장 탁월하게 수행한 간부들을 매년 선정해 ‘골든 네트워크’ 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 상은 하이얼에서 최고의 리더로 인정받는 간부에게만 수여되며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꼽힌다.
하이얼이 세계 최고 생활가전 업체로 도약한 비결로는 여러가지가 꼽힌다. 하이얼 스스로는 ▲소비자 니즈 최우선주의 ▲품질 절대 중시문화 ▲구성원이 주인이 되게 하는 관리문화 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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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얼은 소비자를 이끌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소비자는 항상 옳다는 경영철학아래 소비자 니즈를 어느 경쟁업체보다 먼저 파악해 이를 제품에 신속하게 반영하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 소비자를 리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삼성전자(005930)나 LG전자(066570), 애플 등 전자, IT업계의 선두주자들과는 대조적인 전략이다.
항상 고객 니즈를 파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다보니 일본 소비자들이 소형 용량의 세탁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업체보다 먼저 파악했다. 하이얼이 주도해 키운 이 시장은 현재 일본에서 연간 30만대 규모로 성장했다. 하이얼은 이 시장에서 시장 선도자(First Mover)로서의 강한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시장점유율을 50% 이상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에서도 지난 1995년에 냉동고 깊이가 깊어 불편하다는 임산부의 클레임을 받아들여 깊이를 얕게 한 특화된 냉동고를 내놓아 히트를 치기도했다.
◇ 품질은 사업의 처음이자 끝
쟝뤼민 하이얼 회장은 지난 1984년 칭따오 하이얼 공장 앞 광장에서 불량 냉장고 76대를 모아 놓고 해머로 이를 모두 부수면서 중국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인물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소비자가 냉장고를 주문하고 배달을 받으려면 반년 이상 기다릴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이어서 제조업체마다 품질은 뒷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쟝 회장은 “품질은 기업의 생존기반”이라고 외치면서 냉장고를 부수며 하이얼 조직에 품질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는 지난 1995년 구미공장에서 무선전화기 등 불량품 15만여대를 운동장에 모아놓고 모두 태워버린 ‘화형식’을 거행하며 조직에 품질의 중요성을 설파한 이건희 삼성회장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목적이나 형식이 비슷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이얼의 쟝 회장은 이 회장보다 무려 11년이나 앞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품질 중시 퍼포먼스를 편 셈이다.
품질 불량률 줄이기 기법인 6시그마 캠페인도 10여년전부터 중국업체 사이에서는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 결과 지금은 중국의 주요 제조업체들이 6시그마를 배우기 위해 필수적으로 찾는 곳이 하이얼이 될 정도로 6시그마 고수가 됐다.
◇ 주인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하이얼 특유의 관리문화
하이얼 조직체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이 ‘자주경영체’다. 자주경영체는 글로벌하게 2000여개가 운영된다. 하이얼 전체 직원이 8만여명임 점을 감안하면 1개 자주경영체당 약 40명 가량이 속해 있는 셈이다.
자주경영체장은 소속 직원들의 인사 및 연봉, 사업 전략에 대해 전권을 행사한다. 예컨대 자신이 속한 자주경영체에 인력을 추가로 충원할 경우 언제든지 자주경영체장이 채용할 수 있다. 대신 자주경영체의 실적이 부진할 경우 자주경영체장은 연봉삭감이나 좌천 등 엄격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자주경영체의 장은 명실상부한 하나의 독립된 소사장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자주경영체 부서원들의 연봉도 실적에 따라 지급을 받게 되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기여도에 따라 부서원들의 연봉도 큰 폭으로 차등 적용된다. 특히 실적이 부진하면 자주경영체 구성원 모두 연봉이 대폭 삭감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다. 반면 실적이 좋아지면 연봉이 2배로 오르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푸이에 하이얼 마케팅 이사는 “조직 내 같은 해 입사한 동기라 하더라도 불과 몇년이 지나면 연봉 차이가 3배 이상 나는 것이 흔할 정도”라며 “자주경영체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느냐의 여부가 구성원들의 연봉을 결정하는 가장 큰 평가요소”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