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흡연자는 말이 없다

  • 등록 2012-04-24 오전 8:05:10

    수정 2012-04-24 오전 8:05:10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고백하건대 기자는 흡연자다. "아빠가 되고서도 아직 담배를 피우느냐"고 종종 주위에서 핀잔을 듣는다.

옳은 지적이다. 아이들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주위에서 한마디씩 던지면 딱히 대응할 말이 없다.

그래도 담배를 피운다. 흡연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멋모르고 시작한 담배는 어느새 오래된 습관이 됐다.

최근 삼성이 전사적인 금연을 선언했다. 삼성전자(005930)는 임원 승진과 해외 주재원, 연수자 선발 때 비흡연자를 우대하기로 했다. 금연 서약서를 받고, 그룹장이나 팀장 등 간부들은 금연 때까지 매달 흡연 여부를 검사할 예정이다.

흡연이 회사에도 좋을 게 없다. 한 통계를 보면 1년간 담배로 인한 사망, 결근, 화재 등 재정적인 손실이 국가 전체로 1조원을 넘는다.

게다가 삼성전자의 쌍두인 최지성 부회장과 권오현 부회장은 흡연을 아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흡연이 건강에 나쁠 뿐 아니라 자기 관리 실패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담배 피운다고 들락날락 거리는 직원이 마음에 들 리 없다.

삼성 관계자는 "인사평가에서 동점자 나왔을 때 가급적 비흡연자를 선택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될 확률은 겨우 0.6%(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다. 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려면 흠 하나 없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흡연자들에겐 '비흡연자 우대' 소식은 청천벽력일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한 육군부대의 금연조치가 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시정조치 권고를 내렸다.

이 부대는 '금연부대'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병사들로부터 금연서약을 받고, 흡연한 장병들에게 징계조치를 취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일률적으로 금연서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징계를 내리는 등 강제적인 요소가 많았다"고 말했다. 금연을 장려하는 정책이 아니라 강제적인 조치는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와 군대는 조건이 다르다. 인권위 관계자도 "이동의 자유가 없는 군대라는 조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회사도 옮기면 그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생각보다는 복잡하다. 임원 승진을 앞둔 한 직장인 흡연자는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수십년간 피워온 담배를 이제 정말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잘 안된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었다.

20여년 한 직장에서 일한 그에게 이직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고 금연정책이 부당하다고 강하게 반발하기엔 명분이 약하다. 금연을 과도하게 권하는 시대에 흡연자는 말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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