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기업, 패러다임 바꿔야 산다

ICT 경쟁력 1위..통신인프라에 국한
애플·구글에 모바일 주도권 빼앗긴 통신사 위기
클라우드, 게임플랫폼 등 미래시장 예견하고 준비해야
  • 등록 2011-08-22 오전 8:00:00

    수정 2011-08-22 오전 8:00:00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정부는 그동안 `IT강국`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 근거는 주로 두 가지다. 통신 인프라와 휴대폰 세계시장 점유율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한국은 G20 국가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일본 총무성 등이 실시한 이 평가를 근거로 정부는 “우리는 ICT 강국으로 위상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ICT 경쟁력을 평가한 기준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것으로 ICT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평가 기준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수, 컴퓨터 보유가구, 초고속인터넷 품질` 등이기 때문이다.   결국 ICT 경쟁력 1위의 뜻은 `많은 사람이 PC를 보유하고 빠른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ICT 업계 누구도 이 결과를 두고 `2011년 우리는 ICT 강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을 ICT 경쟁력 1위 국가로 만든 1등 공신인 통신업계부터 변화와 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만 봐도 그렇다.   ◇ICT 주도했던 통신사, 애플·구글에 주도권 빼앗겨   아이폰이 도입되고 스마트폰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휴대폰 제조업체 만큼 충격을 받은 업계가 바로 통신업계다.   그동안 국내 통신업계는 사업자 간 경쟁만 있을 뿐 외부에서 가해지는 별다른 압박이 없었다. 이미 설치된 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매출과 수익을 거두고, 폐쇄된 무선인터넷 환경에서 추가 데이터 수익을 챙기면 됐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연구개발(R&D) 역시 대부분 망 고도화에 집중돼왔다. 그러나 아이폰 도입 후, 통신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알았다. 스마트폰 도입으로 열린 무선인터넷 시대에 통신사는 그저 망을 제공하는 네트워크사업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도입되면서 통신사업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시장지배력은 애플, 구글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로 넘어갔다. 망이 아닌 모바일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장터와 같은 플랫폼이 통신시장에서 경쟁력이 됐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가입자를 늘려 통화수익을 얻는 방식의 전통적인 사업에만 집중한 통신사업자들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 2분기 통신사업자들의 음성수익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KT의 가입자당 음성 매출은 지난 2008년 대비 무려 5000원이나 줄어들었다. LG유플러스 역시 2008년 대비 음성 매출은 7000원 줄었다.   ◇`탈통신·비통신` 시도..아직 역부족   애플과 구글이 OS와 애플리케이션 장터 등 플랫폼을 바탕으로 모바일 시대를 주도하자 통신업계는 급한 마음으로 새로운 사업모델 구상에 나섰다. 전통적인 통신사업으로는 성장이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서비스 구상에 나선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스마트폰 경쟁에서조차 밀리면서 `탈통신` 정책에 사활을 걸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LG유플러스가 살 길은 탈통신”임을 거듭 강조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모바일 광고 플랫폼·N스크린 등 그동안 제공하지 않았던 사업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올해 유무선 통합 2주년을 맞은 KT도 이른바 탈통신을 선언했다. 이석채 회장은 “KT는 더이상 통신회사가 아니다”라며 “컨버전스 그룹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통신이 아닌 사업 분야의 매출을 지난해 27%에서 오는 2015년에는 45%까지 확장한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플랫폼, 비통신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 플랫폼 부문 분사라는 강도 높은 결정을 내렸다. 커머스와 광고, 애플리케이션 장터 등 모바일 관련 플랫폼 사업을 전담하는 회사를 따로 만들어 시장 변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통신업계의 노력에도 불구, 통신업체들은 애플과 구글이라는 `산`을 넘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탈통신, 비통신, 플랫폼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통신회사가 지금까지 선보인 것은 SNS, 내비게이션, 음악 등 플랫폼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단순 서비스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앱스토어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 등에 빼앗긴 무선 콘텐츠 시장을 되찾기 위해 한국형 앱스토어 구축에도 나섰지만 이 역시 시작 단계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래시장 예견하고 준비해야..“서브 플랫폼에 집중”   통신사들이 애플과 구글의 스마트폰 공습으로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는 궁극적인 방법이 독자적인 모바일 OS를 만드는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단기간 가능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통신사들이 장기적으로는 모바일 OS와 애플리케이션 장터 등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사업을 정해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테면 최근 통신사와 포털업계가 제공하고 있는 클라우드와 같은 서비스 플랫폼이나 게임플랫폼, 모바일 메신저 등이 그 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동향분석실 김민식 박사는 “모바일 OS와 같은 거대한 플랫폼이 아닌 클라우드 등 서브 플랫폼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모바일 SW 주도권이 OS에서 웹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선시장의 주도권이 OS 제공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웹 제공자인 구글이나 아마존에 넘어간 사례에서 미래를 대비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플랫폼과 스마트 기기를 자체 보유하기 어려운 통신사가 콘텐츠 업계와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구글 안드로이드 OS에는 이렇다 할 게임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과 제휴로 통신사들이 게임플랫폼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다.   김 박사는 “모바일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구글이나 애플이 아닌 새로운 사업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통신사들이 그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시장의 변화를 미리 보고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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