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 논쟁 격화 "갑론을박"

"아직 시기상조" vs "이미 시작됐다"
美 재무부 "연준 충분히 독립적, 너무 빠른 차단 오히려 失"
인플레 시기 저울질 할 때..인플레 성향 과거보다 더 높아
  • 등록 2009-03-31 오전 8:06:04

    수정 2009-03-31 오전 8:06:04

[이데일리 양미영기자] 지난 주 미국과 영국의 국채 입찰 결과가 부진하자 인플레이션 논의가 격화되고 있다.

이미 지난 해부터 막대한 경기부양과 재정적자에 따른 인플레 우려는 지속되어 온 상황. 그러나 연초 독일에 이어 영국 역시 40년물 국채입찰이 95년 이후 처음으로 미달되면서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인플레 우려도 수면 위로 올라섰다.

물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는 주장도 맞선다. 미국 재무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미리부터 인플레를 두려워할 경우 애써 해 놓은 경기부양 효과를 낮출까 노심초사다.

그러나 경기부양보다는 적절한 통제시점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 역시 높아지면서 인플레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 인플레 "아직은 괜찮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바로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많은 통화를 찍어내기 때문. 그러나 낙관론자들은 단순히 통화를 찍어내는 것이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전히 자금상황이 녹록치 않은 현 상황으로서는 새롭게 통화를 찍더라도 대출을 통해 시중으로 흘러들지 않고 있고 대부분 은행 금고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로 인해 가계와 기업들이 현금을 덜 쓰고 저축에 골몰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연준은 큰 부담 없이 통화를 찍어낼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생산 갭이 GDP의 8%에 달한다며 이같은 잉여 능력이 위축되기 전까지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은 현 상황에서 일부 득이 될 수도 있다. 임금과 세수, 주택가격을 올리는 반면, 채권이나 모기지부채의 표면가치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짐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

피에르올리버 고린처스 버클리대 교수는 "인플레이션의 정치 경제는 현실 상황처럼 명쾌하지 않다"고 말한다.

◇ "연준, 인플레 잊고 있다" 우려..美 재무부 `독립성` 강조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독립성 문제 역시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킬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장 참가자들이 미국 정부가 재정 부담에 직면한 상태에서 연준이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할 경우, 인플레가 빠르게 출현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엄청난 달러 자산을 쥐고 있는 중국의 최근 달러 우려 발언과도 맞물린다.

최근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은행구제 계획을 함께 발표했을 당시에도 이같은 우려가 불거져 나왔다. 연준이 은행구제 등에 개입하면서 본연의 목적인 물가 안정과 인플레이션 방지를 방기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연준은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지난해 대차대조표상 자산이 2조달러를 넘어선데 이어 모기지부채 매입에 1조2500억달러, 국채매입에 300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여기에 소비자대출 프로그램에도 1조달러를 조달키로 했다.

`연준의 역사` 저자인 앨런 멜처는 최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경제 회복이 느릴 경우, 미국 재무부가 산더미 같은 국채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금리를 올리겠느냐"고 비난했다.

다만, 미국 재무부는 이같은 가능성을 일축하고 나섰다. 지난주 연준과 재무부는 공동 성명을 통해 "장기적으로 중앙은행이 AIG와 베어스턴스로부터 인수한 자산을 청산하거나 재무제표로부터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티모시 가이트너 장관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연준의 재정 투입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준의 독립성을 재차 강조했다. 또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경기부양 노력 등을) 너무 빠르게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시기 추정 어려운 맹점..사전에 막아야

그러나 미국와 영국이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과감하게 도입한 양적완화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적절한' 시기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독일이나 영란은행의 머빈 킹 총재의 주장처럼 미국이나 영국이 언제, 어떻게 재정적자를 통제가능한 범위내에서 멈출 수 있는 지 여부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 것.

지나 주 킹 총재는 "거대한 정부 부채는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키워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경고했고, 독일 정부 관계자 역시 "이제는 정부 개입을 줄이고, 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시장도 지난 주 국채입찰 부진을 적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젠 로웨스 JP모간 스트레티지스트는 "하이퍼인플레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양적완화 조치가 전례 없었던 만큼 당국의 대응이 다소 과도했을 수 있고, 필요이상의 통화를 더 많이 찍어낼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갑자기 부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은 크지 않다 인플레가 발생하더라도 중앙은행 통제권 밖으로 벗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 막대한 차입으로 미국의 국가 순부채 규모가 연간 경제생산의 100%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데도 국채 발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일본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금리가 높아질 수록 연간 국가 부채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1년 국방예산과 맞먹는 규모인 GDP의 4%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연간 인플레이션이 3~5년내 8~10%까지 높아질 수 있으며, 영국은 그 시점이 더 빠를 수 있다"며 "채권 가격에 영향을 줄 경우 투자자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호황 당시의 글로벌 공급 사슬이 깨지면서 재고 고갈과 생산능력 위축으로 전세계 인플레이션 경향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코노믹의 피터 와버튼 이코노미스트는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기 위한 공격적인 경기부양 정책은, 이전보다 더 낮은 생산활동에 의해서도 더 쉽게 인플레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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