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커의 ‘지금 다시 계몽’, 스웨덴 공중보건 전문가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는 ‘신(新)낙관주의’를 대표하는 책이다. 팩트를 기반으로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지금 다시 계몽’의 경우 1500년 이후 열강 사이의 전쟁 횟수, 1946년 이후 전투 사망자 비율이 하향 추세를 보여준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 중인 저자는 수업 시간에 이 책들을 읽으며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과학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보는 신낙관주의자들의 ‘팩트’가 객관성과 합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저자는 핑커와 로슬링이 핵심 사실 관계를 빠트린데다 주의주장에 따라 편의적으로 배치했다고 지적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세계은행, 로슬링이 설립한 통계분석 서비스 갭마인더 등의 정보를 분석해 80여 개의 그래프를 새로 그렸다. 같은 데이터에서 기간만 다르게 설정해 핑커와 로슬링의 저서에서 우상향의 직선을 보인 그래프가 반대로 우하향 또는 높낮이가 그대로인 경우를 제시한다. 공공 담론은 팩트의 진위보다 팩트의 종류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저자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볼 것인지 낙관적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낙관과 비관이라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입장이 공동체의 이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를 위해 어떤 팩트를 합의의 기반으로 삼을 것인지다. 팩트가 구성되는 일련의 사회적 과정을 돌아보고, 팩트의 한계를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