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솝우화에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일화를 꺼내 들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려는 ‘횡재세’를 빗대 비판한 것이다. 야당이 도입하려는 횡재세는 황금알을 거둬들이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거위 배를 가르는 행위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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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금융회사를 압박하는 정치권의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금융회사를 공공재로 정의하며, 그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해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금융회사의 이익금을 활용해 이런저런 서민층 지원 사업을 하자고 제안하는 등 총선 이전 치적쌓기에 이용하려는 모습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상생금융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은행이 자발적으로 이익의 일부를 떼내 소상공인에게 돌려주는 모양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치권의 치적쌓기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다. 황금알을 계속 낳게 하려면 환경이 중요한데, 과연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법정최고금리 20% 제한 이후 금리가 올라도 돈을 빌려주면 역마진이 나는 구조다보니,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은 대출 창구 문을 좁히거나 닫고 있다. 갑자기 불어닥친 고금리 상황에 따른 후유증으로 연체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시장은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나선 금융사의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선거철마다 조정한 카드 수수료의 무리한 인하로 인해 카드사는 소비자가 쓰면 쓸수록 손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더 심각한 상황은 황금알을 낳는다 해도, 부화시키지 못하는 현실이다. 황금알을 일회성으로 소진해버리면 대를 이을 거위는 없다. 지금 금융사는 신규 매출을 일으킬 사업이 마땅찮다. 당국이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 길을 터주겠다고 했으나, 제도개선은 하세월이다. 금산분리로 자기자본을 키우기 힘든 국내은행들은 해외 IB(투자은행)와의 경쟁에 뒤쳐지기 일쑤다.
고금리 등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은행뿐 아니라 기업이 해야 할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은행 이익으로 선심쓰기를 하려는 무리한 표심잡기는 환경을 악화시켜 금융산업을 멍들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