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부의 선고가 끝나기도 전에 법정을 떠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해당 재판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습니다. 각하란 소송이나 청구 요건조차 갖추지 못해 옳고 그름에 대한 심리도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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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국가를 다른 국가 법정에 세울 수 없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1심 판결에 불복,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고 오는 23일 항소심 결론이 나올 예정입니다. 그럼 과연 쟁점이 되는 ‘국가면제’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같은 국가면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페리니 판결’입니다. 이탈리아인인 페리니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해 이탈리아 대법원으로부터 독일의 배상 책임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이는 국제법상 국가면제를 위반한 것’이라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습니다. 이후 2012년 2월 ICJ 재판관 15인 중 12인은 “이탈리아 법원이 국가면제를 부인하고 민사소송을 허용한 것은 국가면제권 존중 의무 위반”이라며 독일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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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럼 이같은 국가면제권은 무한정으로 보장될 수 있을까요? 타 국가가 자행한 범행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일까요?
다른 예시를 살펴볼까요? 놀랍게도 한국 법원은 위안부 판결에 있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 배상 판결을 내린 사례가 있습니다. 그것도 이용수 할머니 등이 제기한 손배소 바로 3개월 전이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은 2021년 1월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억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계획적, 조직적으로 자행된 반인도적 행위로서 국제 규범을 위반한 경우까지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는 지난 5월 이용수 할머니 등이 제기한 손배소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외국인의 불법행위는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는 2019년 11월 위안부 피해자 손배소를 앞두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배상 요건은 국가면제 등 절차적 이유로 제한될 수 없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23일 서울고법은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열 예정입니다. 현재 국제법 추세 역시 반인권적인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입니다. 이번 연재물의 마지막은 2012년 ICJ의 ‘페리니 판결’ 당시 아메드 유수프 재판관의 소수의견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국가면제는 국제법에 있어서 불변의 가치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