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줌인] 마음에 투자하면 더 건강해질까?

이강희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부장
  • 등록 2022-12-19 오전 12:04:30

    수정 2022-12-19 오전 12:04:30

[이강희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부장] “이제는 마음에 투자하세요”. 이 문장은 작년부터 쓰고 있는 정신건강 인식개선 캠페인의 캐치프레이즈이다. 정신건강 인식개선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그리고 각 지자체의 광역 및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여러 민간단체가 함께 진행하는 캠페인으로 올해는 10월 7일부터 10월 21일까지 진행되었다. 이 캐치프레이즈는 마음 또는 정신의 건강에 더 관심을 가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투자’는 재테크 관점에서 사람들의 주요한 관심사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계발 측면에서도 ‘자신에게 투자’ 하라는 이야기가 있어왔다.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호소하기 위하여 ‘투자’라는 단어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표어이다. 주변에는 마음 또는 정신이라는 고귀한 가치에 투자라는 세속적인 단어
이강희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부장
를 붙이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는 꼰대스러운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요즘 사람들의 관심에 맞추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전달하는 것 같다는 평이었다. 공무원이 만든 것 치고는 꽤 잘 만든 표어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마음에 투자한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나. 보건복지부의 캐치프레이즈이니 투자해서 돈이 생긴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분명 마음에 투자하면 건강(또는 보건) 내지는 행복(또는 복지)이 향상 된다는 뜻일 것이다. 행복(복지)은 전문분야가 아니니 건강으로 국한해보자. 마음에 투자를 하면 마음이 더 건강해지는가? 마음이 더 건강해진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우선 건강이란 것이 무엇인가부터 봐야 할 것 같다. 건강에 대하여 가장 많이 알려진 정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의이다. WHO 헌장에는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정의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첫째, 사람을 두고 질병이 없다는 것을 완전히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표준질병사인분류(KCD)라는 것이 있다. KCD는 WHO가 통계 생산 등의 목적을 위해 만든 국제질병분류 ICD(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의 한국판이다. 이 KCD에서 구체적인 질병명이라 할 수 있는 세세분류는 총 12,603개이다(추가로 세세세분류가 6,335개 더 있다). 이 많은 질병들 모두에 대해 걸려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

둘째, 어떤 작은 질병도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충치, 무좀, 치질, 여드름 등등의 질병들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이 정의를 따르면 이미 우리 주변에서 질병이 없는 완전히 안녕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건강을 말할 때 일상 생활을 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가벼운 질병들은 제외해야 할 것이다.

셋째, ‘허약하지 않다’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의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좋은 예가 있다. 코로나에 감염된 20, 30대에 비하여 50대 이상의 연령에서는 중증화될 위험이 크고 치명률도 높다. 즉 연령이 많아지면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하여 우리 몸이 이겨내고 회복하는 힘이 약하다. 즉 허약한 것이다. 또 만성질환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중증화될 위험이 커진다고 하니 코로나19에 허약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나 기저질환은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요소이나 그 외에는 내가 허약한지, 또 얼마나 허약한지 알기 어렵다.

넷째, 역으로 신체적으로 완전히 안녕하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꽤 중한 병을 갖고 있으며 건강하지 않은 것이 맞다. 또한 만성질환은 그 자체로 불편하고, 진행되거나 다른 질병을 유발할 수 있어 건강이 허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혈압, 혈당을 조절하는 약을 꾸준히 먹고 식단 조절과 운동 실시, 체중 관리 등 노력을 들여 잘 관리하고 있는 경우 그저 고혈압 또는 당뇨병 환자라고 하는 것은 아쉽다. 노력을 들여 잘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만성질환으로 인한 허약도 극복하고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은 어떨까. 장애는 의학적으로 질병, 외상 또는 선천적인 이유로 인해 신체의 구조나 기능을 상실했거나 변형된 경우이다. 장기적으로 장애가 진행되기도 하고, 신체활동 부족 등으로 각종 만성질환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또한 장애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은 스트레스로 이어져 건강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즉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건강이 허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끝난 후 재활 서비스 등을 통해 장애에 적응하고,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진다면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건강 상태라고 봐야 한다. 나아가 장애에 따른 재활 서비스와 필요한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하는 경우 장애로 인한 허약도 극복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단순히 질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가벼운 질병 또는 만성질환이 있거나 장애가 있더라도 이를 잘 관리하고 적응하여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건강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특별한 질병이 없다고 해도 또는 만성질환이나 장애가 있다해도 금연, 절주, 균형적인 식사, 충분한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사람이 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허약하지 않고 더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건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WHO의 정의를 따르면 ‘정신적으로도 질병이 없고 허약하지 않으며 완벽히 안녕한’ 것을 ‘마음이 건강 하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감이나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저절로 좋아지기도 하지만 운동이나 명상, 취미,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등 여타 활동들을 하면서 좋아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로 질병 상태로 가는 것을 막거나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에 이런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외부의 위험에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힘을 키울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마음 건강에 대한 투자이고 마음이 더 건강해지는 방법이다.

때로는 마음도 심각한 질병에 걸린다. 큰 재난을 경험한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심각한 병에 걸릴 수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 등 여러 원인으로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등의 마음의 병에 걸리기도 한다.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같은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은 중한 마음의 병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질병들도 조기에 치료를 받아 중증화를 막고 증상을 잘 관리하면서 치료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고, 완전히 회복될 수도 있다. 마음의 병도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잘 관리할 수 있고, 신체 장애와 같이 재활과 지역사회의 지원으로 얼마든지 일상을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도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마음 건강에 대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투자하면 마음은 더 건강해질 것인가. 그렇다. 더 건강해진다. 그러니 마음에 투자하자. 덧붙이자면 이 글에서는 개인 차원에서의 건강에 대한 투자만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개인의 마음 건강 투자가 잘 이루어지려면 국가와 사회의 투자도 절대 필요하다. 그리고 글에서 드러나듯이, ‘마음에 투자한다’는 것은 건강이 고정된 상태가 아닌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WHO 집행이사회는 1998년 기존 정의의 ‘완전한 상태 (complete state)’ 대신 ‘역동적 상태 (dynamic state)’ 로 변경하고 ‘영적 안녕(spiritual well-being)’을 포함하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WHO 헌장은 아직까지 기존의 정의를 계속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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