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전화라고 무시했던…성수대교 붕괴[그해 오늘]

1994년 10월21일 오전 7시40분께 성수대교 중간 붕괴
차량 추락으로 32명 숨지고 17명 부상…여학생이 9명
부실공사, 관리소홀, 안일대처 겹친 인재…처벌은 솜방망이
다리 보수하던 와중에 삼풍백화점 붕괴…고도성장 그늘
  • 등록 2022-10-21 오전 12:02:00

    수정 2022-10-21 오전 12:02:0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4년 10월21일. 이른 아침부터 112와 119에 성수대교가 붕괴했다는 장난 전화가 접수됐다. 말도 안 되는 신고 전화에 경찰과 소방 당국은 무시로 일관했다. 시간이 갈수록 장난 전화가 빗발쳤다. 경찰이 서울 성동구 인근 상공에 헬기를 띄워 현장을 확인한 시각은 이날 오전 8시20분께다. 그날 오전 7시40분께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린 지 40여 분이나 지나서였다.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가 무너진 직후 모습.(사진=연합뉴스)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는 교량 중간 5번과 6번 교각이 밑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붕괴했다. 이로써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다. 다리를 지나다 추락한 차량 6대에 타고 있던 승객이 피해자였다. 개중에 시내버스가 한 대 있었는데 대부분 사상자가 여기서 발생했다. 이 버스는 다리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무너진 교량에 차량이 반쯤 걸쳤다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해 피해가 컸다.

희생자 가운데 직장인과 학생, 교사가 많았다. 사고 시각이 출근 및 등교 시간과 겹친 탓이다. 버스 희생자 가운데 무학여중·고교생이 9명이었다. 이들은 강남에 거주했는데 강 건너 성동구까지 학교에 다니다가 변을 당했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의 강남·북 교차 배정을 금지했다.

예견된 참사였다. 검찰 수사결과, 시공을 맡은 건설사 동아건설은 설계와 다르게 조악한 재료와 기법으로 다리를 지었다. 그런데 1979년 완공하고 한 차례도 정밀 안전진단을 받지 않았다. 서울시는 사고 두 달 전에 다리에 균열을 확인했는데 보수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루 16만대가 넘는 차량이 드나들기에 교통체증을 감당할 수 없었다. 사고 전날 교량 균열을 발견하고 큰 철판을 덧대는 땜질 처방에 그쳤다. 사고 당일 다리를 건너던 시민이 위험을 알리고자 신고했지만 뭉개버렸다.

성수대교 붕괴 당시 거꾸로 추락한 버스 모습.(사진=연합뉴스)
신고 전화를 장난 전화로 취급한 경찰·소방 당국에 대한 비판도 일었다. 물론 워낙 비현실적인 사고라서 그랬다지만, 늑장 대처로 구조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분명했다. 현장에서 초기 구조는 함께 추락한 피해자들 몫이었다. 관선 시장이던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경질돼 후임으로 우명규 시장이 임명됐다. 우 시장은 성수대교 건설 당시 서울시 책임자였던 사실이 드러나 임명 11일 만에 자진해서 사퇴했다.

동아건설과 서울시 관련자 등 17명이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1심은 무죄 혹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전원을 석방했다. 사고가 설계, 시공, 관리 각각이 복합적으로 잘못돼 일어난 것이지 어느 일방의 책임만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게 요지였다.

국민 법감정을 거스르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항소심에서 동아건설 현장소장과 서울시 관련자 2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나머지는 벌금과 집행유예를 받았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32명이 숨진 사고만 있고 여기에 따른 책임은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성수대교를 지은 동아건설은 대외 신뢰 하락과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2001년 파산했다. 현재 SM그룹의 SM동아건설산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아건설의 모기업 동아그룹은 환란을 거치면서 몰락하고 결국 해체됐다.

다리는 1995년 4월26일 현대건설이 보수를 시작해서 1997년 7월3일 다시 통행이 재개됐다.

다리를 한창 복구하던 중간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는 와우아파트 붕괴(1970년)와 더불어 고도성장이 낳은 그늘로 꼽힌다. 성수대교 붕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담화문을 내어 ‘이번 사건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에 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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